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한 일본을 1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사태 발생 69일 만에 전격적으로 법적 대응 카드를 빼어든 것은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WTO 제소 절차에 따라 2개월간의 양자협의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재판부에 해당하는 패널을 설치해 일본의 WTO 협정 위반 여부를 가리게 된다. 최종 결과가 나오려면 2년 이상이 걸리지만 한·일 간 외교적 타협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라 불가피한 선택이다. 승소하면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걸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셈이고, 경제적으로 맞대응할 명분을 얻게 된다. 제소 자체만으로도 일본이 추가 보복에 나서는 것을 견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의 최혜국대우 의무, 수출제한 조치의 설정·유지 금지 의무, 무역 규정을 일관되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의무 등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치밀한 전략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자유무역 원칙에 위배되는 부당한 조치임을 밝혀내야 한다. 일본은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무력화시키려는 목적에서 경제 보복에 나섰다. 겉으로는 우리 정부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 관리에 소홀하다고 주장하며 안보상 이유를 내걸고 있지만 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고위 인사들이 수출 제한 조치의 배경이 강제징용 문제임을 실토하는 발언을 수차례 한 바 있다. 소송에서 우리가 유리하다는 분석이 우세한 편이지만 일본도 우리가 제소할 것에 대비해 나름 대응책을 마련했을 것이기 때문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치밀한 법리 전개와 증거 제시로 일본이 정치적 동기에서 차별적인 무역 보복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승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수출 규제가 길어지면 우리 기업들의 부품 조달에 애로가 가중될 수 있어서다. 분쟁이 계속되면 두 나라 모두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갈등을 증폭시킬 불필요한 조치를 자제하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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