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일본화(Japanification)’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일본화란 30년 동안 저성장·저금리·저물가 등 ‘3중고’에 시달렸던 일본의 경제 상황이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현상을 뜻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예금 금리 인하를 앞세워 경기부양책을 내놨지만 시장은 일본의 장기 불황을 의미하는 ‘잃어버린 20년’을 떠올린다. 유로존의 경기가 좀처럼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미국마저 정책 금리 인하에 가담하면서 일본화가 전 세계로 퍼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한국도 통화정책에 기대기보단 정책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일랜드 일간지 아이리시타임스는 ECB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직후인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유로존의 기준금리가 향후 10년 이상 ‘0(제로)’를 밑돌 것이다. 이는 제로금리를 1999년 2월 처음 단행한 일본이 지금까지 금리를 올릴 수 없었던 상황과 같은 ‘일본화(Japan-like)’ 현상”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금리 인하로도 경기를 상승시키지 못했던 일본의 사례를 보고도 아직 통화정책이 해답이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다”고 비판했다.

ECB는 이날 역내 시중은행이 ECB에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예금금리를 -0.4%에서 -0.5%로 0.1% 포인트 낮췄다. 오는 11월부턴 매월 200억 유로(약 26조3000억원)의 시중 채권을 무기한 매입하기로 했다.

유로존의 경제 상황은 일본의 장기 불황과 닮은 점이 많다. 금리를 낮추고 재정을 푸는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ING그룹은 “일본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금리 인상 계기를 항상 놓쳤다. 무역 긴장이 최고조인 현재 금리를 인하하는 유로존의 모습은 이전 일본과 흡사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유로존도 고령화 현상으로 정년 연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일본의 초고령 사회가 부른 경제 붕괴 현상에도 빗댔다.

일본화 ‘전염병’은 강대국으로 향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물가 상승 기대치가 하향 조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독일과 영국에 이어 미국까지도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특히 영국의 ‘노딜(합의 없는) 브렉시트’가 단행되면 안전자산 수요가 영국 국채로 몰려 영국도 마이너스 금리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중장기적으로 물가 하방 압력 때문에 정책금리를 제로 하한까지 내릴 것이라고 봤다.

문제는 일본화가 유로존을 ‘침몰’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센터는 소매예금 비중이 높은 독일은 마이너스 금리로 연간 24억 유로(약 3조15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하고, 이탈리아는 ECB의 재정정책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어 두 국가 모두 ECB에 불만이 크다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원화된 통화정책을 펴는 ECB 체제가 한계를 드러낼 경우 유로존 붕괴로 이어져 시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한국도 일본처럼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현재 불황이 시작됐던 1990년대 일본보다 국민소득이 낮고, 국가부채비율은 높다”며 “통화정책에 의존하기보단 반(反)기업적 규제 철폐 등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산업협력실 이사도 “소득재분배 등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성장이 먼저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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