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한·일 양국 정부 및 국민 간의 모든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구권협정 해석상의 분쟁이다. 청구권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고 외교적으로 봉합한 양국 정부에 동등한 책임이 있다. 외교가 만든 문제, 외교로 해결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에 따른 청구권협정 해석으로, 일본 기업에 대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정부 입장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정부가 그 전에 표명한 입장과 배치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정부의 대외적 입장을 변경할 수는 없다. 국가 신뢰에 관한 문제다. 대법원의 판단은 2005년 정부가 밝힌 입장에 배치되지 않는다.

정부는 2005년에 처음으로 강제동원 피해보상 및 무상자금의 성격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40년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한일회담 문서를 토대로 검토했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의 법적 배상·보상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정부는 고통받은 역사적 피해사실에 근거하여 정치적 차원에서 보상을 요구했으며, 이러한 요구가 양국 간 무상자금 산정에 반영됐다고 보아야 한다”고 정리했다. 그래서 “정치적 요구에 따라 받은 것이지만 정부가 다시 일본 정부에 법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제동원 자체의 불법성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협정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 개인이 일본을 상대로 법적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법원은 지난해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충실하고 타당한 청구권협정 해석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법원 판결은 일본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살아 있다고 밝힌 2005년 정부 입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 문제는 당시 한국인도 일본 국민이었으므로 원래 법적으로 책임질 것이 없는 사항이나, 한국 정부가 피해보상을 요구하였기에 다시 제기하지 않기로 하고 금전을 지급하였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청구권협정에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샌프란시스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 된다”고 쓰여 있다고 주장한다.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협정에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언급되지도 않는데, 그 권리가 소멸한다고 해석된다는 것이다.

양국 정부 모두 무상자금에 정치적 차원의 강제동원 피해보상이 포함됐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럼에도 피해자 개인은 일본 기업에 대해 법적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일본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갈등의 본질이다.

어느 쪽 입장이 더 타당한지 따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처음부터 서로 의견을 달리하기로 합의한 문제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은 정부 입장이 사법부에 의해 처음으로 인정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로 인해 무상자금에 포함된 정치적 차원의 피해보상금이 문제가 된다. 법적으로 배상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한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받았던 일본 기업분 피해보상금은 이제 이중으로 받은 결과가 된다.

양국 정부 모두의 해석을 포용하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먼저, 일본 기업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을 이행하고,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에 보전하는 것이다. 무상자금 수혜 한국 기업의 참여는 한국 정부 내부의 문제다. 일본 기업의 대법원 판결 이행으로 일본은 한국의 청구권협정 해석을 존중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보전으로 일본의 청구권협정 해석이 존중받게 된다. 일본 정부의 추가적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기업의 법적 배상이 완료됨에 따라 전에 받았던 정치적 피해보상금을 돌려주는 셈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이 국제법을 안 지킨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다. 이웃나라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 협의에 나서는 게 옳다.

박동실 (전북대 초빙교수·전 주모로코대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