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은 1947년생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치자면 올해 일흔셋, 만으로 일흔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여정의 필모그래피는 현재 진행형이다. 전도연 정우성과 함께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지난해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쩌면 그녀 윤여정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영화를 촬영 중일지도 모르겠다.

2003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 이후 현재까지 윤여정의 필모그래피는 단 한 해도 비지 않는다. 몰아서 찍는 것도 아니고 비어 있는 해도 없으며, 매번 꽤나 비중 있는 역을 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윤여정은 언제나 영화를 찍고 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윤여정이 이를테면 경력단절배우, 결혼으로 인해 잠시 경력이 단절되었던 여배우라는 점이다. 여배우라는 수식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경력 면에 있어서 여배우에겐 단절의 시기가 있기 마련이었다. 결혼과 출산 때문이다. 윤여정이 전형적인 경력단절배우였다. 1974년 배우로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중 결혼했던 그녀는 미국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고, 아예 잊혔다. 그랬던 그녀가 85년 한국으로 돌아와 연기를 재개했을 때, 게다가 이혼을 하고 돌아왔을 때, 끊어진 경력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윤여정 본인조차도 이혼이 여배우로서 엄청난 결격 사유가 되었다고 고백할 정도이다.

윤여정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80년대 중반, 결혼과 함께 스크린을 떠났던 여배우가 이혼 후 되돌아왔을 때의 반응이 어땠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는 바가 있다. 85년 박철수 감독의 영화 ‘어미’는 그런 의미에서 윤여정의 영화 복귀작이었다. 그러나 김수현 각본으로 더 유명했던 영화였던 만큼 영화계로의 진정한 복귀는 더디었다. 오랫동안 윤여정은 김수현 드라마의 단골 배역으로 다시 익숙해졌다.

TV 스타로 자리매김했던 그녀는 2003년 ‘바람난 가족’으로 다시 영화계에 그 존재감을 알렸다. 그렇게, 56세 이후 매년, 다른 작품, 다른 배역으로 영화에 출연 중이다. 윤여정은 50대 이후 그저 어머니, 할머니, 아내, 이웃의 연기에만 멈춘 게 아니라 먹고, 마시고, 연애하고, 사랑하는, 욕망을 가진 입체적 인간을 연기하고 있다. 그걸 어색하지 않게 그럴듯하게 보이게 해준 배우가 바로 윤여정이다.

배우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단순히 작품의 수가 아니다. 한국영화 전성기 시절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200편 이상의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들이라고 해서 기억되는 배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윤여정은 주연 18작품, 조연 12작품, 그렇게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기억에 남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이는 영화 데뷔작인 ‘화녀’(감독 김기영·1971)에서부터 최근작인 ‘그것만이 내 세상’(2017)에 이르기까지 모두에 해당되는 평가이다. 윤여정이 출연하는 영화에서 윤여정은 조연이든 주연이든 심지어 특별출연인 순간조차 기억에 남는다. 47년생 현역 배우 윤여정에겐 그런 힘이 있다.


시대적 욕망 품은 대체불가의 연기

윤여정의 인물들은 평이한 성격을 찾기 어렵다. ‘화녀’ ‘충녀’(김기영·1972)의 명자, ‘어미’의 홍여사, ‘하녀’(임상수·2010)의 병식, ‘돈의 맛’(임상수·2012)의 백금옥 등 그들은 인간이 가진 욕망의 극한 지점까지 가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윤여정은 욕망이라는 무정형의 감정 덩어리를 구체적 인물 안에 인격화해 드러낸다.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 ‘화녀’만 해도 그렇다. 시골에서 상경해 가정집 식모로 들어간 명자(윤여정)는 식모로 돈을 벌어,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겠노라고 미래를 꿈꾼다. 명자에게 있어 성욕은 그런 의미에서 꿈의 수단이자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란을 위해 수컷 병아리를 감별해 죽여 없애듯이 ‘화녀’ 속 욕망은 자연과 거리가 멀다. 급기야 주인집 남자에게 겁탈당하고 임신까지 하게 된 명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출산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순진하면서도 위험한 욕망은 “서울엔 31층짜리 건물이 있다며? 떨어져 죽기 편리하겠다”와 같은 아이러닉한 대사와 함께 도착적이면서 기하학적으로 그려진다.

기이한 욕망의 가역반응은 김기영 감독과 다음 해 함께 작업한 ‘충녀’에서도 반복된다. 알사탕과 정사, 흰쥐와 피를 탐하는 유아와 같은 충격적이며 기괴한 에피소드들을 영화적 상징성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바로 그로테스크한 연기를 아무렇지 않게 흡수하는 윤여정이다. 돌출적 이미지와 충돌하는 문어체 대사들은 윤여정의 눈빛과 움직임, 목소리를 통해 정서로 증폭된다.

말하자면, 윤여정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데 멈추는 게 아니라 그녀가 아니라면 과연 누가 그것을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대체불가의 연기를 선보인다. 윤여정만의 이 독보적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게 바로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이다. 욕망이라는 모호하고도 위험한 추상어가 윤여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장면화된다. 고가도로와 택시, 양주와 2층 양옥집과 같은 현란한 미장센들 사이에서 계층적 위화감과 성적 갈등이 튀어 오른다. 그것은 바로 70년대적 욕망이었다.

불쌍한 욕망 기계들의 면모는 2003년 이후 윤여정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람난 가족’ 속 시어머니 홍병한의 수상한 시니컬, 재벌집에 기생하며 욕망의 배수구를 뚫어주는 ‘하녀’의 병식, 젊은 남자의 성을 사는 ‘돈의 맛’의 뻔뻔한 재벌집 사모님 백금옥은 윤여정 외의 대체 배우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윤여정은 이 불쌍한 욕망 기계들의 페르소나가 되기를 꺼려 하지 않는다. 욕망이 천박한 것이지 그것을 영화적으로 그려내는 게 험한 게 아니라는 메시지가 연기를 통해 전달된다. 윤여정은 그저 나이에 걸맞은 상식적이며 상투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 나이의 이면에 들끓는 욕망을 고스란히 뒤집어 드러내는 연기를 한다. 함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연기임에 분명하다.

윤여정이라는 장르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나이에 비해 파격적인 정사 장면의 뒷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배우가 제일로 연기 잘할 때는 돈이 필요할 때예요. 나는 배고파서 한 건데 남들은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예술은 잔인한 거예요.” 예술가에게도 돈이 필요하다. 예술영화 감독도, 배우도, 조연출도, 현장 스태프들도 모두 돈이 필요하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다 돈을 벌려고 일을 한다. 때로는 더 많이 벌려고도 한다. 하지만 윤여정의 이 말은 다르게 들린다. 여기서의 가난함은 어쩌면 늘 새로운 것을 탐하고, 주저하지 않는 갈급함을 말하는 것일 테다. 윤여정의 선택은 여전히, 아직도 파격적이다. 아니, 윤여정만이 할 수 있는 장르가 있다. 한국 영화엔 윤여정 장르가 있는 것이다.

2016년 이재용 감독이 연출한 ‘죽여주는 여자’가 그런 작품이다. 종로 일대 공원을 배회하며, “연애하실래요?”라며 말을 거는 그 대사는 바로 배우 윤여정의 것이다. 거친 대사와 험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허둥대거나 부자연스러운 데가 없다. 할아버지들을 유혹하는 말투와 코피노 아이를 달래는 말투 사이에 자연스러운 여성, 인간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윤여정이 없었다면 과연 누가 ‘죽여주는 여자’가 될 수 있었을까? 어떤 의미에서 ‘죽여주는 여자’는 윤여정이라는 캐릭터를 전제하고 만들어진 윤여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윤여정 장르에 가깝다.

20대엔 20대의 욕망, 40대엔 40대의 욕망, 그리고 60대가 되어선 60대의 욕망을 구체화하는 윤여정은 젊어서 가난했던 청춘과 너무 부유한 나머지 후안무치가 된 상류층도, 거리에서 여생을 보내느니 차라리 형무소가 낫다는 극빈층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윤여정식으로 그려낸다. 60대 재벌집 사모님도 60대 거리의 여자도 모두 어울린다.

그건 윤여정이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간적 깊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연기란 다양한 삶의 순간과 면모들을 배우의 몸짓과 목소리, 눈빛을 통해 분광하는 작업이다. 윤여정이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한국영화사는 귀중한 인간학 하나를 완성하는 중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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