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추석 연휴 전 SNS를 통해 공개한 추석 인사에서 “보름달이 어머니의 굽은 등과 작은 창문에까지 세상을 골고루 비추듯이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를 소망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밀어붙이면서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를 얘기한다.

거짓말과 위선으로 포장돼 있던 조 장관의 민낯이 드러나고 그 가족의 범죄 혐의가 짙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대통령은 눈을 감아버렸다. 오히려 검찰의 칼을 피하라며 창과 방패를 쥐여줬다. 장관의 아내는 첩보영화 찍듯이 변장하고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 뭉치를 들고나오고 자산을 관리하는 증권사 직원을 시켜 자택의 PC 하드디스크를 교체했다. 숨길 게 없다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합리적 의심을 살 만한 게 한둘이 아니다. 지금까지 가족이 증거인멸이나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후보자가 장관이 된 ‘나쁜 선례’는 없었다. 국민은 그런 대통령을 보면서 또 한번 상처 입고 허탈해 하고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 ‘이게 나라냐’는 박근혜 정권 말 국민의 절규가 다시 들린다. 조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나라는 두 동강 났다. 대학가에선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나섰어도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야당지에서 지금은 여당지가 돼 버린 신문사와 정권 따라 입맛을 맞춰온 방송사에서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정권의 나팔수’가 되지 말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자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도 달라진 것은 없다. 구중궁궐에 갇혀 민심에 귀 막고 눈 감으면서 최순실에 놀아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더니 ‘우리 이니 하고 싶은대로 해’하며 맹목적으로 따르는 소수 지지층의 소리만 듣는 문 대통령과 무엇이 다른가.

대통령이 이렇듯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정권 지지층이 떠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게다. 극렬 지지층은 아니더라도 과거의 386, 지금의 586세대는 대통령과 민주당이 아무리 헛발질을 해도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서진 않을 것이다. 조 장관 지명 한 달 만에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38.5%로 높아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586세대가 누군가. 군부독재를 경험하며 민주화투쟁을 했던 대다수 지금의 50대는 현 진보 정권에 대해 비판은 하더라도 버리진 못한다.

‘양키 고 홈’을 외치며 반미 투쟁 선봉에 서서 통일의 꽃이라 불리던 어떤 이는 아들을 외국 영어캠프에 보내고, 노동운동을 바탕으로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쏟아낸 유명 작가는 수년 전 명품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대의 순수함과 열정은 사라지고 50대가 된 그들도 기득권 세대가 됐다. 강남좌파를 보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분석에 동의한다. “민주화투쟁을 하던 시절과 달리 오늘날엔 주로 먹고사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사람들이 정계 진출을 시도하기 때문에 부자들이 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고 강남좌파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많은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치는 좌우나 진보·보수의 싸움도 아니고 기득권 엘리트가 보다 나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그들만의 싸움일 뿐이다.”(한겨레신문 9월 16일자 ‘강남좌파’에 대한 오해) 인구 분포로 보면 50대 이하 많은 국민은 현 정권에 우호적이다. 지금의 50대가 60대가 되면 그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오도가도 못하는 절반 이상 국민의 이런 심리를 이용했다고 한다면 더 나쁘다.

정권 초기 80%대를 넘나들던 대통령 지지율은 43.8%(리얼미터 조사)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년4개월 전인 2017년 5월 10일 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국민에게 약속했던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는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테이크아웃 커피 들고 청와대 참모들과 산책하고 청와대 식당에서 줄 서서 밥 먹는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도 햄버거 가게에서 보통 사람들과 함께 줄 서서 햄버거 사 먹는 오바마 같은 대통령을 갖게 됐다고 행복해 하던 때가 불과 2년여 전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민심에 맞서는 권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조국 사태로 생채기 난 국민들 마음을 다독여줬으면 한다.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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