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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의 문학스케치] 진실로 가는 길

소설가의 작품세계와 대표작이 딴판일 때 진짜는 어느 쪽일까, 진실은 한 쪽에만 있는 걸까


소설을 잘 모르는 이라 해도 레이먼드 카버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소설집 ‘대성당’은 그에게 문학적 명성을 안겨준 책인 동시에 그의 개인사에서 이전까지의 고달픈 삶을 벗어나 안정을 찾는 전환점이 되어준 책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대성당’과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꼽는다. 이 두 편의 소설은 황석영의 단편 ‘삼포 가는 길’이 그러하듯이 낯선 타인 사이에 기적처럼 찾아오는 교감과 소통의 순간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대성당’은 아내의 옛 친구인 시각장애인과의 만남을 통해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게 되는 것들, 다시 말해 마음의 눈을 떠야만 볼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며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사소한 오해가 어떻게 거대한 불화의 원인이 되는지를 다루는 동시에 결코 철회할 수 없을 것 같던 타인에 대한 맹렬한 증오와 적개심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스르르 사라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여러 해 전 카버의 소설을 처음 읽어보았다. 명성만큼이나 인상적이었지만 아무래도 번역된 작품은 우리 소설과는 뭔가 다른 미묘한 부분이 느껴지게 마련이어서 원서를 찾아보았다. 원서를 읽고 알게 된 것 가운데 하나는 그의 문장이 평이하다는 사실이었다. 중학생 영어 수준인 내가 수월히 읽을 수 있을 만큼 명료하고 단순하고 짧은 문장이어서였다. 물론 쉬운 문장이라 해서 그것에 담긴 의미마저 쉽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문장에 심오한 의미가 담기도록 직조해내는 거야말로 그의 소설가적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미덕 역시 그의 작품이 여전히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뒤 몇 해에 걸쳐 그의 다른 작품집과 그의 평전까지 번역돼 출간되었다. 한 권씩 한 권씩 읽어보았고 이런 독서를 통해 한 걸음씩 더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최초의 독서 이후 내 마음속에 생겨났던 미묘한 질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았고 그의 작품을 접할수록 질문 역시 견고해져 이 질문 자체가 답을 바라지 않으면서 답을 바라는 척하는 심술궂은 녀석인 것만 같았다.

그의 소설을 거의 다 읽은 뒤 내 마음속에는 그의 소설이 만들어낸 무늬가 새겨졌다. 이 무늬는 한마디로 쓸쓸했다. 그의 소설 대부분이 소통의 불가능성, 교감과 이해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 관계의 공허함을 다루고 있어서 사람이란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싶을 만큼 쓸쓸했다. 그의 작품에 드리워진 색조는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그의 목소리는 비관적이었다. 앞서 언급한 두 편의 대표작에서 감지할 수 있던 기적 같은 교감과 소통의 순간을 다른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보자면 그의 대표작이야말로 그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이례적이라 할 만큼 낙관적인 셈이며 그의 중심적인 작품세계와는 한참 멀리 떨어진 낯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도저한 거리감이 바로 미묘한 질문의 정체였다.

결과적으로 그 두 편의 소설이야말로 그의 대표작일 수가 없었다. 그가 한평생 몰두하고 고뇌했던 세계와 다를 뿐만 아니라 그의 세계관과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한평생 심혈을 기울여 했던 일이 아니라 그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했던 일로 평가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보이고 싶은 나로 보아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보고 싶은 대로 나를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만이 소외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어쩌면 레이먼드 카버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그 두 편의 소설이 언급되는 상황이 지독히 쓸쓸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가 정말 외로웠는지, 외로워했다면 얼마나 그러했는지 모른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가 몰두하고 사랑했던 이야기들이 담긴 작품이 비록 대표작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해도 그가 인간의 비참한 현실에 몰두하고 그것들을 사랑했기에 ‘대성당’과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같은 작품도 쓸 수 있었을 거라는 점뿐이다. 교감과 소통이 불가능한 현실과 삶을 쓰고 또 쓰다 보면 기적처럼 교감과 소통이 이뤄지는 뜻밖의 작품도 쓰게 된다는 사실은 진실에 이르는 길은 반듯하고 거침없는 길이 아니라 거짓과 기만,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 있음을, 그러므로 진실에 이르기 위해서는 진실이 거짓 속에서 태어나며 거짓 위에 늘 진실이 하늘처럼 드리워져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함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손홍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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