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의학 칼럼]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예수


오늘 나눌 말씀은 빌립보서 4장 8절이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 19세기 세포병리학자로 루돌프 비르쇼가 있었다. 그는 사람의 몸을 정치 영역으로 해석해낸 최초의 학자다. 비르쇼에 따르면 세포는 시민이다. 세포가 모여 몸이라는 국가를 이루는 셈이다. 그는 몸이 병든 것을 세포들이 싸우는 것으로 이해했다. 건강한 상태는 세포들이 민주주의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세포는 평등하며 협력해 몸이라는 민주주의 국가를 구성한다고 그는 말했다. 세포는 혼자이면서 자유하고, 자유롭지만 몸 전체에 이바지하는 기능을 감당한다. 개인과 전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개인은 자유롭지만, 전체를 해쳐서는 안 되고, 전체는 개인의 자유를 빼앗지 않으면서 모든 몸을 돌봐야 한다.

전체가 개인의 자유를 빼앗으면 전체주의가 되고 개인이 전체를 무시하고 자유만 남발하면 이기적인 개인주의로 변질된다. 최근 대한민국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의 논쟁이 일었다.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자는 측은 민주주의라는 말 안에 자유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자유라는 허울을 씌워놓고 독재를 했던 과거 극우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말만 써도 그 안에 이미 자유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측은 북한에서도 민주주의라는 말 앞에 인민이란 단어를 넣어 인민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 같은 전체주의와 구분 짓기 위해선 자유민주주의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옳은지는 전문가들이 다뤄야 한다. 중요한 건 민주주의이든 자유민주주의이든, 핵심이 되는 주제는 국가가 정치적으로 개인에게 자유와 권리, 의무를 준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자유와 권리, 의무를 진 개인들이 선거에 참여해 대표자를 세운 뒤 간접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누가 나를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국가인가, 나 자신인가. 인민민주주의를 주창하는 북한에서는 국가가 개인을 관리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인 대한민국에서는 내가 나를 관리한다.

내가 나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 바로 대한민국의 위대한 시민이다. 내가 나를 관리할 수 있는 자유 시스템이 전체를 이롭게 했을까, 국가가 나를 관리하는 통제 시스템이 전체를 이롭게 했을까. 우린 그 답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나를 관리할 수 있는 자유 대한민국이 발전했고 성장했다.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복음을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무한한 에너지를 쏟아 내면서 기도의 동산에 올랐다. 세상의 임금으로 세우겠다는 대중의 환호와 갈채에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인간의 시간, 세상의 시간표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골고다 언덕에 오를 때까지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했다. 예수님이 이룬 자기 관리라는 성공의 열매를 우리 전체가 얻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천국의 시민권자들을 자기 관리에 성공한 위대한 개인들로 묘사했다. 무슨 미덕이 있는 일을 하거나, 자랑할 만한 일을 했다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참되게 행했는지, 무엇을 하든지 경건한 삶을 잃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무엇이나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하게 행동했는지 자기 관리 리스트를 정한 뒤 철두철미하게 관리해야 한다.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이 참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자기 관리에 성공하는 사람이 나라와 교회를 복되게 하는 진짜 리더다. 오늘 당신의 삶이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했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관리하길 권한다.

이창우 박사 (선한목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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