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독립의 꿈 품고 연해주로 간 한인들 ‘항일 투쟁의 심장’이 되다

<3부> 세계에 던진 메시지 (3) ‘독립운동의 중심’ 연해주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관. 최재형 선생이 1920년 일제에 의해 순국하기 전까지 거주하던 집을 개조했다.

러시아 연해주는 러일전쟁(1904년) 을사늑약(1905년) 경술국치(1910년)를 겪으면서 국외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항일운동의 역사가 서려있는 유적이 곳곳에 있다.

156년 전 시작된 이주역사

고려인 이주 역사는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 지신허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인 이민 역사는 크게 4개 시기로 분류된다.

1기(1864~84년)는 러시아의 우호적 태도 아래 한인 이주가 이뤄진 시기다. 2기(1884~93년)에는 한인 이주가 급격히 증가했고 러시아는 제한정책을 시작했다. 3기(1893~1910년)는 애국지사들의 망명과 이주가 늘어난 시기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해 수많은 애국지사가 연해주로 망명해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4기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대거 연해주로 이주한 시기다.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 연해주

두만강을 사이에 둔 북·중·러 접경지역인 이곳에는 독립운동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단지(斷指)동맹비와 기념조형물 등이 있다. 1909년 2월 7일 르라스키노 마을에서 안중근 의사와 김기용 백규삼 황병길 등 12명은 태극기를 펼쳐놓고 각기 왼손 약지를 잘라 선혈로 ‘대한독립’이라는 글씨를 쓰고 만세를 외쳤다.

독립운동가들은 연해주에서 13도의군 국민회 성명회 권업회 등 항일결사를 조직했고 계동학교 한민학교 등도 설립했다. 1914년 대한광복군 정부를 이곳에서 조직했으며 1919년 노령임시정부(露領臨時政府)를 수립했다. 노령임시정부는 훗날 한성임시정부, 상하이임시정부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재탄생한다.

특히 권업회는 러시아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아 한인의 실업(實業)과 민족교육을 장려할 목적으로 1919년 설립된 기관이다. 한인의 러시아 귀화와 토지 조차(租借), 거주권이 없는 한인의 일터 마련 등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했다. 한인사회의 경제력 향상을 통해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러시아 연해주에서도 만세시위가 열렸다. 3월 17일 오전 우수리스크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오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세시위가 열렸다. 18일에는 스파스크에서, 21일에는 라즈돌리노예에서 만세시위와 독립선언 집회가 열렸다.

왼쪽 사진은 지난달 기념관에 설치된 흉상과 기념비. 오른쪽은 크라스키노에 세워진 단지동맹 조형물.

독립운동의 중심에 선 최재형

연해주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최재형(1860~1920)이다. 그는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로 태어나 69년 가족과 함께 러시아 지신허로 이주했다.

71년 러시아 상선 선장 부부의 도움으로 러시아 교육을 받고 선원으로 러시아와 유럽의 문물을 경험한다. 이후 통역으로 일하면서 러시아 군용도로 건설사업에 동원된 한인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러시아와 한인사회에서 신임을 얻은 최재형은 93년 크라스키노의 도헌(都憲·군수)에 임명됐다. 그는 한인 자녀들을 위한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도헌으로 재직 시 받은 봉급 전부를 은행에 맡기고 이자로 40여명의 학생을 공부시켰다.

그는 1913년 권업회 특별총회에서 회장에 취임했으며, 의병 언론 교육 권업회조직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19년 4월 상하이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됐다.

최재형은 일제가 연해주 내 일본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체포됐다. 탈출을 시도하던 그는 20년 4월 일본 헌병대의 총격으로 순국했다. 이곳엔 그가 순국 전까지 거주하던 고택이 있는데, 지난 3월 기념관으로 단장했다.

독립운동 역사 발굴 및 계승 절실

연해주의 독립운동 역사는 1937년 러시아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맥이 끊긴다. 당시 17만명 이상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53년 스탈린 사후 이주의 자유를 찾으면서 고려인은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했고 91년 소련 붕괴 후 다수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재이주했다. 2009년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을 세우고 연해주 한인 동포들의 문화유지 친선 화합 학술 교육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 교포 5세로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발굴하는 박미하일(70)씨는 “안타깝게도 러시아 내 독립운동가 후손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면서 “교포사회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는 여전히 구전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에선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이 주축이 돼 내년 최재형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 추모위원회가 출범했으며, 국비와 자부담으로 지난달 현지에 기념비와 흉상을 제막했다. 최근엔 ‘나의 아버지 최재형’ 도서도 출간했다.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은 “노비 출신의 자산가였던 최재형 선생은 동포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독립운동가”라면서 “독립운동의 진정한 영웅으로 애국의 혼, 민족의 별이었던 최 선생을 기념하며 순국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연해주(러시아)=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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