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율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교수가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카이스트 핵심기술 이전 설명회’에 연사로 나와 ‘저열 팽창 불소화 투명 폴리이미드’ 기술의 개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 소재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배제에 대응할 수 있는 대체 품목으로 꼽힌다. 윤성호 기자

한국 정부가 18일 0시를 기점으로 일본을 수출 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시행했다. 일본에 전략물자(무기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의 수출 심사기간, 필요 서류, 자격 조건 등에 있어 규제가 강화된다.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지난 1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데 이어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한·일 통상 관계는 사실상 벼랑 끝까지 갔다. 정부는 거듭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은 한국에 대한 일본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상응 조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수출기업 피해, WTO 무대에서 일본의 역공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은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18일자 관보에 게재하고 이날부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14일부터 20일간 행정예고를 통해 국민참여입법센터·이메일 의견 접수, 규제 심사, 법제처 검토 등을 마쳤다. 의견 접수 결과 91%가 고시 개정안에 찬성했다고 한다. 다만 의견 접수 건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개정안은 현행 전략물자 수출에 있어 우대국인 ‘가’ 군을 ‘가의1’과 ‘가의2’ 군으로 나눴다. 이어 일본만 ‘가의2’ 군으로 재분류했다. 그동안 한국은 바세나르 체제 등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한 나라를 ‘가’ 군에 넣고 수출 우대국으로 규정했었다. 정부는 여기에 ‘국제공조 가능 여부’라는 새로운 기준을 덧붙였다. 일본처럼 4대 수출통제체제에 가입국이지만,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등으로 긴밀한 국제공조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국가를 ‘가의2’ 군으로 옮겨 수출심사 문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고시 개정에 따라 앞으로 일본 기업이 한국산 전략물자를 수입하려면 개별수출허가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 서류는 3종에서 5종으로 늘고, 심사 기간은 현행 5일에서 최장 15일로 길어진다. 일본 기업이 수출통제 제도를 잘 준수해온 한국의 자율준수기업(CP) 기업에만 내주는 사용자포괄수출허가 제도를 활용하면 수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 다만 사용자포괄수출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 기업은 CP 기업 가운데 AA등급 이상인 103개 기업만 가능하다. 신청 서류도 수출허가 신청서 1종에서 최종수하인 진술서 등 3종으로 늘어난다. 유효 기간은 3년에서 2년으로 짧아진다. 일본으로의 품목포괄수출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 수출기업 역시 AAA등급을 받은 11개 기업으로 제한된다.

산업계에선 이번 고시 개정으로 네트워크 보안 장비나 반도체 장비 등을 일본에 수출하는 국내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일본에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은 100개 안팎이다. 정부는 수출허가 신청 전담심사자를 배정해 허가 속도를 높이고, 지난 7월 출범한 소재부품수급대응지원센터를 통해 수출기업의 애로사항을 접수·지원할 방침이다. 하지만 기업의 피해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다 일본의 역공 가능성도 있다. 일본 측은 의견 접수 과정에서 “일본을 신설 지역으로 분류한 사유가 불분명하다”는 의견을 한국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WTO 무대에서 일본 측이 이번 조치를 자국 조치에 대한 상응 조치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정부는 고시 개정의 근거로 수출입관리 강화와 함께 “일본이 수출통제제도를 부적절하게 운영한 사례가 있다”는 주장도 편다. 아직 구체적 사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