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진영 간 진흙탕 싸움의 패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국민
사회개혁을 원한다면 제도적 변화를 적극 실행해야
20, 30대의 정의감에 부합하는 공정 프로그램 개발이 급선무


정당은 없고, 진영만 있다. 정략만 있고, 정치는 사라졌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조국 사태가 우리에게 남겨 놓은 정치적 현실이다. 도덕성을 유달리 강조했던 좌파 운동권이 실제로는 특혜와 특권을 대물림하는 기득권이 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조국 사태의 핵심은 이 정부가 추구한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스스로 배신했다는 점이다. 그 정점은 여러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없다”면서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를 외면하고 ‘합법성’만을 내세우는 것은 근본적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의 포기다.

조국은 더 이상 도덕적이지 않은 운동권 정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정치 자체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박근혜정부와 달리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촛불정부’임을 자임하였다.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유화한 보수 정권과는 달리 이 정부는 권력을 자신이 아닌 국민을 위해 사용하리라 기대했다. 이 정부가 ‘자유한국당=기득권=악(惡)’이며 ‘더불어민주당=운동권=선(善)’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적폐청산을 할 때도, 국민은 정치보복을 의심하면서도 이 정부의 도덕성을 신뢰하였다. 그러나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586 운동권도 사실은 기득권세력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조국 사태는 이 정권의 토대인 도덕성에 중대한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조국 이후의 정치는 도덕성을 상실한 권력의 진영투쟁이다. 우리에게 촛불을 들게 했던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은 이제 이 정권을 향한다. 국민의 정의감에 깊은 상처를 입힌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서도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를 소망”한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추석 인사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많은 국민들이 이 말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는 사실은 이 정부가 내걸었던 평등, 공정, 정의의 가치가 색이 바랬음을 말해준다. 이 정권의 어젠다가 조국 사태로 말미암아 증발해버린 것이다.

포스트 조국의 정치는 더 이상 ‘도덕성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우파가 썩은 것만큼 좌파도 똑같이 썩었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좌파 여당이 그동안 누렸던 도덕적 프리미엄을 잃은 만큼 우파 야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입은 외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치적 가치와 어젠다가 없다면, 포스트 조국의 정치는 진영 간의 진흙탕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싸움이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형성하는 좌우 기득권 세력 내의 싸움이라면, 이 싸움의 패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국민이다.

촛불혁명으로 발전시킨 민주의식을 퇴보시키지 않으려면, 조국 이후의 정치는 ‘어젠다 투쟁’이 되어야 한다. 실행해야 할 사태를 의미하는 ‘어젠다(agenda)’는 본래 라틴어 ‘아게레(agere)’에서 유래한다. 정치적 어젠다는 단순한 의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치와 정책을 의미한다. 어젠다가 없다면 새로운 시작을 감행할 수 없다. “기회는 균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처럼 공평한 사회의 어젠다가 단지 좋은 말로만 들릴 뿐 국민의 적극적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이 정권이 성공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포스트 조국의 정치가 어젠다 투쟁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정치적 어젠다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공정은 사실 문재인정부 이전에 이명박정부 때도 내걸었던 구호이다. 그럼에도 변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거치면서 역사가 세월호 이전과 그 이후로 갈라질 줄 알았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촛불혁명으로 사회가 훨씬 더 나아질 줄 알았다. 국정의 형태와 통치 방식은 전 정권과 다를 바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개혁을 원한다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어젠다를 내세워야 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포괄적 도덕적 가치에서 내려와 국민이 느낄 수 있는 제도적 변화를 실행해야 한다. 조국 이후에는 어떤 실정도 도덕성만으로는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을 움직이고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얻으려면, 여당과 야당은 서로 좋은 어젠다를 ‘훔쳐야’ 한다. 유럽에서 보수당이 오랫동안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젠다가 좋다면 사회당이든 녹색당이든 어디에서 먼저 제기했든 가져다 자신의 어젠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가 특히 20대와 30대에게 상처를 줬다면, 보수 야당은 이들의 정의감에 부합할 수 있는 공정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구태의연한 삭발의 결기만으로는 결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진영의 싸움은 더욱 본격화될 것이다. 이왕 싸울 거면 미래를 선도할 어젠다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으면 좋겠다. 조국 사태야 어차피 검찰 수사로 매듭지어지겠지만 ‘포스트 조국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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