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발생 5주년을 맞았던 2016년 3월 11일, 일본 시민들이 지진 당시 전교생 상당수가 희생된 오카와초등학교 부지를 찾아 묵념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날은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하늘은 화창했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비극의 기미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숲에선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얌전하던 개는 시끄럽게 짖어댔다. 고양이들은 산으로 달려가더니 어느 순간 모습을 감췄다. 한 번도 마른 적 없던 개울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얼마 뒤 집채만 한 파도가 마을을 삼켰다. 세상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바뀌었다.

2011년 3월 11일이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날. 쓰나미의 최고 수위는 36m에 달했다. 1만8500명 넘는 사람이 물에 빠져서, 불에 타서, 무언가에 깔려서 목숨을 잃었다. 이재민은 50만명에 달했다. 세계에서 재난 방비 시스템이 가장 훌륭하다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후쿠시마 원자로에 문제가 생기면서 방사성 물질까지 대거 유출됐다.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는 바로 8년 전 그날의 참사를 복기한 작품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로 ‘더 타임스’ 아시아 편집장인 리처드 로이드 패리가 썼다. 당시 벌어진 어마어마한 참사를 그는 어떻게 다뤘을까. 저자의 취재기가 펼쳐지는 지역은 일본 동북부의 작은 마을 가마야다.

이곳에 있는 오카와초등학교에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쓰나미 당시 그곳에 있던 학생 78명 가운데 74명이 사망했다. 대피할 시간이 충분했고, 몸을 피할 장소도 있었고, 확성기를 단 차량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라고 떠들어댔지만 무슨 까닭에선지 참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지진은 이날 오후 2시46분에 일어났다. 불어난 물로 학교가 정전된 시간은 3시37분이었다. 학생들에겐 무려 51분의 골든타임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교사들의 안일한 지시 탓에 허무하게 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2014년 대한민국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참사가 그랬듯 이 학교에서 벌어진 일 역시 어른들의 무능이 만든 인재였다. 참사 이후 거짓말과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참사 이후 이 지역을 취재하기 위해 마을을 향했는데,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카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쓰나미 중에서 최악의 것, 모든 이야기 중에서 가장 듣기 힘든 이야기였다.”

저자는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구한 소수의 학생, 유일하게 생존한 교사, 사고 당일 학교에 없었던 교장, 마을 주민의 경험담 등을 깁고 엮어서 참사의 실체를 그려낸다. 생존자와 공무원과 교사들 사이에 존재하던 “숨겨진 공포와 은폐의 냄새”까지 선명하게 드러낸 수작이다.

쓰나미의 파워를 실감케 하는 묘사도 인상적이다. 이런 문장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소금물과 진흙, 해초 냄새가 났다. 짜증 나는 것은 그것이 인간 세상의 물질과 부딪혀 그것들을 먹어치울 때 내는 소리였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압축기의 입속에 들어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유족의 이야기는 독자들 가슴에 흥건한 아픔을 남길 것이다. 딸을 잃은 한 여성은 진흙에 덮여 평온한 모습으로 숨을 거둔 자식을 안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고 한다. 아이의 뺨에서 진흙을 닦아냈고, 입에 한가득 담긴 진흙도 빼냈다. 하지만 진흙은 콧속에도, 귓속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건 고작 타월 두 장뿐이었다.

“금방 타월이 까매졌어요. 다른 것이 없어서 내 옷으로 진흙을 닦았어요. 아이의 눈이 반쯤 떠져 있었는데 그건 그 애가 잠잘 때 하곤 하던, 깊은 잠에 들었을 때 그랬어요. 그렇지만 눈에도 흙이 있었어요. 그리고 타월과 물도 없었어요. 나는 진흙을 닦느라 혀로 지사토(딸의 이름)의 눈을 핥았어요. 그렇지만 눈을 깨끗하게 할 수 없었고 진흙은 계속해서 나왔어요.”

문학적인 필치로 그려낸 참사의 후일담은 아릿한 통증을 남긴다. 한국 독자라면 세월호 참사의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사 이후 진실 규명이 이뤄진 뒤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유족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책에는 이런 대화가 등장한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괴물에게 살해당했어요. 그것은 마치 검은 그림자 같아요. …쓰나미는 눈에 보이는 괴물이었어요.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괴물은 영원히 계속될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이 누구죠?”

“나도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요. 사물의 표면만을 중요시하는 일본인의 독특한 특성이지요. 그리고 절대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만심에 있는 것이지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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