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마당에 들어온 미술… 약자 위한 안식처를 만들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서울마루 야외공간과 연결 ‘쉘터 포 소울’ 전시전

뷔라수 세태의 작품 ‘제3 자연’.

쓰레기장에서 생활하던 인도 어린이는 차디찬 주검이 돼 어머니 앞에 돌아왔다. 어머니를 도와 쓰레기를 주워 생활비를 벌던 착한 아들이었다. 네덜란드인 예술가 뷔라수 세태는 버려진 페트병을 쌓아 올려 3m 높이의 안식처(쉘터·Shelter) 구조물을 만들었다. 천장을 형성한 페트병 사이로 드문드문 들어오는 햇빛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모자(母子)의 소망을 나타냈다.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주임사제 주낙현)에서는 지난 7일부터 2주간 ‘쉘터 포 소울(Shelter for Soul·영혼의 안식처)’ 전시전이 열리고 있다. 전 세계 59개국 500여팀이 공모해 선정된 16점의 안식처 구조물이 성당 곳곳과 성당 옆에 있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서울마루’ 야외 공간에서 전시 중이다. 한국건축가협회, 국제전문인도시건축봉사단(BaMI) 등이 서울시와 함께 연 전시전에 성당이 공간을 선뜻 내줬다.

심정아 아트제안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에 설치된 작품 ‘달팽이 증언자를 위한 영혼의 안식처’에서 시편 말씀을 읽고 있다.

지난 16일 성당을 찾았을 때 해외 작가들은 작품을 설치한 뒤 본국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위안부 등 사회 문제에 예술로 목소리를 내는 단체 ‘아트제안’의 심정아 대표가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출품한 ‘달팽이 증언자를 위한 영혼의 안식처’는 흰색 텐트에 눈물을 흘리는 눈과 세상을 보는 눈을 새겼다. 등에 집을 이고 살아가는 달팽이가 느리지만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듯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역시 상처를 짊어진 채 큰 눈으로 전쟁을 목격했음을 표현한 것이다.

심 대표는 “시편 구절을 텐트 바닥 담요에 수로 새겨 아픔을 치유하는 하나님 사랑을 표현했다”며 “예술품이 교회와 자연스럽게 조화될 수 있음을 이번 전시전을 통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아 우란 외 3인의 작품 ‘디오의 고요한 공간’.

성당 예배당 안에는 깔때기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긴 천 구조물이 있었다. 바닥에는 편안한 쿠션이 놓여 아이들이 누워 쉬기에 좋아 보였다. 성당을 찾은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춰 쿠션을 손으로 만져보고 기념 촬영을 했다. 인도네시아 예술가들이 제작한 이 작품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자폐 아동에게 엄마의 품처럼 따뜻한 공간을 선물하고자 만들어졌다.

이밖에도 성당 곳곳에는 노숙인과 시골 소녀, 뇌출혈로 쓰러진 할머니 등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치유를 형상화한 쉼터 구조물들이 설치돼 있었다. 작품들은 국내 최초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어우러져 마치 교회가 전시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시민들도 성당 안으로 자유로이 들어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예술품을 감상했다.

교회 안 쉼터에는 국내 작가들의 미술품 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다. 신영성씨는 회화 작품인 만인사유상 일부를 전시했다. 작품은 아담과 하와의 모습과 함께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수십 명 표정으로 담고 있다. 신씨는 “고등학교 동기가 작품을 봤다고 연락을 해 신기했다”며 “교회가 예술가를 위한 공간을 앞으로도 자주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민수씨는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재봉으로 그린 ‘긍휼’과 모진 비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서 있는 ‘홀로서다’ 작품을 전시했다. 하씨는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기독교 미술을 생각하는 이가 없는 현 상황에 대해 기독 예술인이라면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정서경 외 2인의 작품 ‘중독 피난처’.

전시전은 매주 토요일 다양한 행사를 함께 열고 있다. 성당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설명하는 건축 투어와 시민을 대상으로 색채 심리상담이 열린다. 교회 본당에선 오케스트라 연주도 감상할 수 있다. 주낙현 주임사제는 “영혼을 위한 쉼터라는 교회의 역할을 예술가들이 해주신 것에 감사하다”며 “사회적 약자를 껴안고 살아야 할 교회의 역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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