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경찰들이 1993년 7월 당시 경기도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인근 농수로에서 희생자의 유류품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A씨는 부산에서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한 뒤 잔인하게 살해한 이모씨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경찰은 아직 용의자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씨로 좁혀지고 있다. 이씨는 94년 1월 충북 청주 자신의 집으로 놀러온 처제(당시 20세)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1,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씨는 처제 시신을 집에서 1㎞ 떨어진 창고에 은폐하기도 했다. 범행의 잔혹성이나 시신 유기 수법이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유사해 당시에도 주목받았다.

여성들을 강간한 뒤 살해해 인적이 드문 화성의 광활한 논 수로에 몰래 감춰둔 점이 특히 더 유사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경우 지문 등 자신의 흔적이 쉽게 지워지도록 비가 내리는 날을 골라 범행한 점이 이씨 사건과 두드러지게 다르다며 용의선상에서 이씨를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9월 4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프로그램에서 9차 사건 범인으로 추정되는 DNA 감정서가 국과수에 남아 있음이 확인됐고 목격자가 22명이나 더 있었음이 밝혀졌다. 연쇄살인의 9번째는 화성시(당시 화성군) 태안읍 병점5리 야산에서 김모(13)양이 스타킹으로 결박당한 상태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비오는 날 심야에 버스에서 내린 김양이 실종됐고 다음 날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이 버스 운전기사는 침을 탁탁 버스 밖으로 뱉고 마른 체격을 가진 20대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앞서 88년 9월 7일 7차 살인사건 직후 버스에 올라탄 남자에 대한 다른 운전기사와 안내원의 기억을 바탕으로 몽타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버스 운전기사가 증언한 범인의 특징은 성폭행 피해자들의 증언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경찰은 설명하기도 했다. 피해자들 진술에 따르면 사건 당시 범인은 마른 체격에 165~170㎝의 키,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은 머리, 오똑한 코에 쌍꺼풀이 없고 눈매가 날카로운 갸름한 얼굴의 20대 중반 남자였다. 또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수사본부가 당시 공개한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도. 연합뉴스

이 몽타주는 7차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 전쯤 퇴근하던 자매가 범인의 피습을 받았지만 언니의 기지와 이웃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았고 이후 수원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자신들을 습격한 용의자를 보고 근처 파출소에 신고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때가 바로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지만 출동한 경찰관들은 그 자리에서 유유히 도주한 범인을 끝내 검거하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용의자를 특정한 데는 DNA 분석기술의 발달이 큰 몫을 했다. 이 사건의 재수사를 맡은 미제수사팀은 기록 재검토를 하던 중 사건이 발생한 80년대에 비해 최근의 DNA 분석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증거물 가운데 기적적으로 피해 여성의 거들에서 제3자의 DNA가 검출됐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뒤에야’ 최악의 미제사건이 풀린 순간이었다.

경찰은 곧바로 보관 중이던 남은 증거물들도 국과수로 보내 현재 감정을 의뢰한 상태이다. 첨단 DNA 분석기술로 악명 높은 장기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사례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45년간 미제로 남았던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경찰이 비슷한 방법으로 붙잡았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