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촛불 항쟁 통해 헌법과 민주공화국을 재발견해
조국 장관은 최소한의 시민적 덕성 없어 시민 자격조차 의문
문 대통령 임명 강행은 촛불과 민주공화국 정신의 부정
여권이 쓰는 공정 정의 개혁 국민들이 아는 것과 달라
권력 유지 위해 국가와 공동체 토대인 말까지 오염·교란시켜


2016년 겨울과 이듬해 봄. 촛불 항쟁은 ‘국가란 무엇인가’를 토론하고 체험하는 국민 교육장이었다. 촛불을 통해 한국인들은 헌법과 민주공화국을 재발견했다.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 통치 구조를 정한 최고 규범인 헌법은 그동안 추상(抽象)이었다. 학교에서 배웠지만, 쓰임새도 힘도 모호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와 헌법상 탄핵 절차가 촛불 항쟁에서 작동했다. 헌법재판소의 인용을 통해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헌법이 ‘여기 오늘’ 살아 있는 실체임이 증명됐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연창했다. 국민주권과 공화국이 국민의 머리와 가슴으로 들어왔다.

문재인정부는 촛불의 힘으로 들어선 ‘촛불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차례 이를 자임했다. 촛불 광장에서 표출된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2년여 만에 기막힌 전도(顚倒)를 목격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일가의 논란, 그리고 문 대통령의 장관 임명 강행은 촛불 정신의 부정이다. 민주공화국에 대한 배반이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제는 법치와 권력분립이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목적은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검증해 국정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함이다. 이 두 검증 기준 중 도덕성을 크게 좁혀 법 위반 여부만을 따져보자. 대통령은 “(조국 후보자를)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조 장관의 문제는 의혹이 아니다. 부인 정경심 교수는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사문서위조)로 이미 기소됐고, 사모펀드 투자 관련 법 위반과 증거인멸 혐의가 짙다. 조 장관 자신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모펀드 투자 의혹만으로도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처벌받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 PC를 자택으로 무단 반출한 것은 절도죄다. 딸 출생신고와 관련해선 국회에서 위증했다. 이런 식이면 장관을 못할 사람이 없다. 법치의 부정이다. 지난 2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조 장관이 국회에서 사실상 셀프 기자간담회를 열도록 지원하고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사회를 봤다. 행정부를 견제하라는 국민의 신임을 받은 국회의원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권력분립의 부정이다.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가 어원인 공화국(republic)은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하는 공적 공간을 의미한다. 공화국의 핵심 가치는 정의(正義)이다. 공화국은 공공선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시민정신(시민의 덕성)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조 장관은 시민의 덕성을 가졌는가. 최소한의 도덕성이라고 할 수 있는 법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시민의 자격이 있는지마저 의심스럽다. 겉으로 공익을 부르짖지만, 행동은 철저히 사익을 추구했다. 이토록 표리부동한 사람에게 어떻게 법치를 관장하는 고위 공직을 맡길 수 있는가. 대통령의 조국 임명은 공화국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촛불을 거스르는 이번 정부의 무리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 입으로 두 말, 세 말을 한 자신들의 이율배반을 호도하기 위해 군사정부 때나 볼 수 있던 행태도 서슴지 않는다. 국가와 공동체 존립에 필수적인 말을 오염시키고 혼란케 하는 것이다. 여권이 요즘 사용하는 공정과 정의, 평등, 개혁은 국민들이 그동안 알던 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대선 때 내걸었던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슬로건은 조국으로 인해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과정은 상관없습니다. 결과는 내 마음입니다’라는 문구가 이를 대신했다. 조국 사태가 드러낸 공정과 정의의 죽음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큰 것이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은 조국 임명 강행이틀 뒤 추석 인사말에서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를 소망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알고 있는 공평은 국민들이 알고 있는 공평과 글자는 같지만 의미는 다른 게 틀림없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검찰 개혁의 첫 번째 요체는 검찰을 정치 권력의 하수인에서 탈피시키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조 장관과 일가에 대한 수사는 이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대통령도 격려한 대로 ‘살아 있는 권력’의 부정과 부패에 손대고 있다. 그런데 여권은 윤 총장의 행위를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한다. 여권이 말하는 검찰 개혁은 대체 뭔가. SNS에서 나도는 대로 ‘조국이 해야만 검찰 개혁, 남이 하면 적폐’가 딱 맞는다.

정치의 핵심은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말의 힘을 통해 작동한다. 민주주의는 ‘설득’과 ‘동의’를 통해 일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가 진영논리로 말을 비틀고 막말을 했지만 이렇게 핵심적 가치를 담은 언어를 오염시키고 혼탁하게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재집권에 눈이 멀었더라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촛불로 집권한 정부가 촛불을 부정했다. 이제는 국가와 공동체의 토대까지 흔드는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정도가 아니라 비극이다.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