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살인을 즐기는 듯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여성 9명을 살해하면서 매번 같은 수법을 고수했고 경기도 화성을 떠나지 않았다. 경찰이 연인원 200만명을 동원해 수사에 나서고 모방범죄까지 발생하는 동안 어디 한번 잡아보라는 듯 범행을 거듭했다. 수법은 잔혹했으며 증거는 치밀하게 없앴다. 흉기를 쓰지 않고 직접 목을 졸라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봤다. 신체 주요 부위를 훼손하고 시신을 논두렁 등에 유기했다. 당시의 과학수사 기술로는 드문드문 남긴 흔적에서 결정적 증거를 포착할 수 없었다. 수사 대상자가 2만명을 넘었고 지문 대조만 4만명을 했지만 그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33년간 장기미제로 남아 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경찰이 찾아냈다. 1994년 처제를 살해해 수감돼 있었다. 그가 범인이 맞을 경우 연쇄살인이 왜 9건에서 그쳤는지 설명된다. 교도소에 갇히지 않았다면 살인을 유희쯤으로 여겼던 범인은 아마 다시 범행을 반복했을지 모른다. 다른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살인 중독’을 언급하면서 “화성 사건의 범인은 아마 교도소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일 수 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겠다. 공소시효가 만료돼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더라도 반인륜 범죄에 대한 사회적 징벌은 이뤄져야 한다. 첫 단계는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사람을 9명이나 죽인 자에게 역사의 그늘로 사라질 기회를 줄 수 없다. 세 건의 살인에서 나온 DNA가 용의자의 것과 일치했지만 더 확실하게 진범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수사기법을 총동원해 더 많은 증거를 확보하기 바란다. 진범이 맞는다 해도 기소할 수 없으니 재판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살인범의 얼굴과 인적사항이 사람들에게 공개될 공식적인 기회가 없다. 사회적 지탄을 받게 하는 유일한 징벌의 수단이 효력을 갖도록, 범죄는 반드시 밝혀진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에 각인되도록, 진범임이 확인되는 시점에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 33년 만에 용의자를 찾아낸 건 경찰이 미제사건 수사팀을 확대하고 활성화한 결과였다. 이 사건 외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강력사건이 많다. 끝까지 추적해야 할 것이다. 완전범죄는 없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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