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나는 인사청문회 무용론자였다. 국회에서 인사 때마다 정쟁의 판이 깔리는 꼴을 보기 싫었다. 논문을 표절한 의원이 후보자의 연구윤리를 비난하는 적반하장과 의원 출신 후보자는 다 통과되는 이심전심도 못마땅했다. ‘어떻게 살아왔나’에 몰두해 ‘무엇을 하려는가’는 뒷전인 검증이 무슨 소용이냐 싶었다. 그 때문에 청와대가 장관하시라고 전화하면 장관 말고 차관 시켜 달라는 사람이 많다니, 블랙코미디 아닌가.

이랬던 생각이 180도 바뀌었음을 다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사청문회의 역기능은 차원이 다른 순기능을 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 좋은 인재를 발탁하려는 취지에 맞게 운용되지 않는다”며 답답해 했지만, 더 좋은 인재를 발탁해 만들려고 하는 더 나은 사회를 ‘취지에서 벗어난’ 청문회가 거꾸로 앞당겨주고 있는 듯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사진)은 인사청문회의 그런 순기능을 발견하게 해준 후보자였다.

그 청문회는 드라마 같았다. ‘SKY캐슬’이 등장인물을 넘어 사회적 현상을 다뤘듯이 청문회는 조국이란 등장인물을 통해 기득권 상류층의 행태를 보여줬다. 의사란 직업을 차지하려는 그들의 집요함과 입시제도의 허점을 120% 활용하는 노하우와 품앗이하듯 밀어주고 끌어주는 그들만의 리그가 드러났다. 보통 사람은 이름도 몰랐을 사모펀드라는 것이 그들의 편법 증여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청문회가 알려줬다. 프라이빗 뱅커라는 은행원이 그들의 컴퓨터를 나르며 증거인멸(아니라면 잔심부름)까지 해준다는 것도 눈길을 끄는 에피소드였다.

기득권층의 세계를 평범한 이들이 이토록 생생하게 들여다볼 기회, 인사청문회가 아니면 거의 없을 것이다. 계층 사다리가 끊겼다는 세상에서 인사청문회는 올라갈 수 없는 저 높은 계층을 적어도 관찰은 할 수 있게 해준다. 볼 수 있으면 알 수 있고, 알면 그것이 정당한지 판단할 수 있다. 조국 사태로 공정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사람들이 그런 판단을 한 결과였다. 인사청문회는 계층 사다리의 부재를 관찰과 감시로 보완하는 ‘계층 렌즈’의 순기능을 하고 있다.

청문회 탓에 좋은 인재를 발탁하기 어렵다지만 청문회는 좋은 인재를 육성하는 또 다른 기능을 가졌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지 20년이 됐다. 이는 청문회를 보면서 반칙과 특권이 어떤 지탄을 받는지 학습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공직에 투신하려는 사람, 그 길을 걷고 있는 젊은 세대는 지금 청문회에 서는 이들보다 더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나갈 것이다. 그래야 원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잘 알게 됐다. ‘인사청문회 세대’, 청문회가 영어로 Hearing이니 ‘H-제너레이션’쯤으로 불릴 이들이 청문회에 설 때가 되면 인재 발탁이 어렵다는 말은 자연히 사라지지 않을까. 그때까지 10~20년쯤 인사에 난리를 겪는 것, 나는 기꺼이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조국 사태를 겪은 여당이 인사청문회를 손보려는 듯하다. 순기능을 퇴색시키지 말라.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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