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모씨가 25년 전 충북 청주에서 검거돼 옷을 뒤집어쓴 채 조사받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반기수 경기남부경찰청 화성연쇄살인사건수사본부장이 19일 수원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최종학 선임기자, 중부매일 제공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된 이모(56)씨의 본적이 1986년 2차, 1987년 6차 사건이 발생했던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씨는 마지막 10차 살인 사건이 벌어진 1991년에도 화성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씨의 DNA가 10건의 살인 사건 중 3건에서 나온 유류품 DNA와 일치해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은 1986년 10월 20일 진안리의 한 농수로에서 두 번째 피해자인 박모(당시 25세)씨 시신을 발견했다. 이듬해 5월 20일 박모(당시 30세)씨 시신 역시 진안리에서 발견됐다.

본적은 옛 호적법상 호주(아버지)의 호적이 있는 장소다. 이씨는 1993년 4월 충북 청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주소지를 몇 차례 바꿨으나 계속 화성 일대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인 사건은 모두 화성군 태안읍사무소 반경 3㎞ 이내에서 발생했고 이씨의 본적지 역시 해당 범위 내에 포함돼 있다.

그동안 경찰 프로파일러 등은 살인범이 주로 1번 국도를 중심으로 범행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해 이용했고, 시신을 발견되기 어려운 곳에 유기한 점 등에 비춰 범행 현장과 근접한 지역에서 생활한 것으로 추정해 왔다.

이씨는 청주로 이사한 지 9개월 만인 1994년 1월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 이 사건으로 기소돼 이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교도소에서는 한 차례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징계 전력이 없고, 가석방도 가능한 1급 모범수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버스정류장에서 습격을 받았던 목격자들은 당시 용의자 인상착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마른 체격에 165~170㎝ 키, 스포츠형 머리, 날카로운 눈매의 20대 중반 남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이씨는 이 목격담을 토대로 만든 당시 몽타주와 많이 닮았다. 도예를 취미로 삼고 두각을 나타내 수감자 도자기전에 출품했다. 도예는 섬세한 손 감각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는 이 손으로 악마와 같은 짓을 서슴지 않았다. 경찰이 피해자 유류품에서 검출한 DNA를 통해 이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던 5, 7, 9차 사건은 처제 살해사건 수법과 매우 유사했다.

이씨의 평소 성격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교도소 측은 “이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됐다는 보도를 접한 뒤에도 특별한 심리적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도 “오늘 다른 수형자와 분리조치가 취해져 독거실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경찰이 교도소를 찾아가 DNA 증거를 제시했을 때도 담담한 태도로 “아니다”고 딱 잡아뗐다고 한다.

법무부 교정본부 관계자는 “우리 자료에 이씨는 전과기록이 없는 초범으로 기록돼 있다”며 “수용소 내 작업장에서는 주로 철공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씨의 모친과 형이 1년에 두세 차례 면회를 온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화가 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할 정도의 성격 소유자다. 아들을 방에 가둬 마구 때리고 학대했고, 아내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지고 무차별 구타했다. 아내가 가출한 뒤 전화를 걸어오자 “내가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아두라”고 말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이씨 내면에는 얌전함과 극도의 잔혹함이 공존했던 셈이다.

수원=강희청 방극렬 기자, 김판 기자 extrem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