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 간 불평등론’(세대론)을 다룬 책이 잘 팔린다. ‘불평등의 세대’(이철승 저)와 ‘386세대 유감’(김정훈·심나리·김항기 저)이 그렇다. 저자들은 지금의 50대인 86세대의 권력 독점 현상을 말한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세대론이 86세대와 그 아랫세대를 분리하고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데 이용된다고 본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로 진보 진영이 분열 양상을 보이자 세대론이 보수 세력의 도구라며 경계하는 시각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세대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세대론은 정치권의 86세대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세대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터에서의 불평등이다. 대충대충 일해도 정년을 보장받고 꼬박꼬박 월급까지 오르는 행운의 시절을 그 어느 세대보다 오래 누리는 집단이 있다는 게 세대론의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운동권 출신 86세대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86세대를 겨냥한 주장이다. 세대론이 젊은 세대의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 이유도 직장에서, 취업 과정에서 피부로 느끼는 불평등 탓이다. 다만 세대론의 결말은 좀 공허하다. 분석은 날카롭지만 논의의 마지막에 이르면 힘이 빠진다. 세대론자들은 86세대의 자기희생과 양보를 요구하거나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보여 달라고 말한다. 필자도 5개월 전 세대론에 동의한 칼럼에서 “책임감을 보여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냉정하게 보면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얘기다.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자기의 이익을 쉽게 포기하는 집단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내심 기대한 것은 시간이었다. 어서 시간이 흘러 86세대가 은퇴해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면 세대 간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수혜를 이어받고 있는 40대 중후반 세대까지 일터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면 노동시장 개혁의 조건이 조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사실상 정년을 연장하는 안을 발표했다.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안이라지만 이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정부 안이 실현되면 86세대의 은퇴 시점이 늦어지게 된다. 가뜩이나 혜택을 누려온 86세대에 인생의 보너스를 주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계속고용제도는 기업으로 하여금 재고용과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방안이 됐든 86세대 중에서도 기득권을 가진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기득권 집단은 연공서열 문화가 뚜렷한 조직에서 과도한 보호를 받는 정부와 공기업, 대기업의 정규직 86세대를 말한다. 기득권이 대물림되고 노조의 힘이 센 이런 조직에서 정년 연장이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86세대 기득권 집단의 재고용과 정년 연장은 세대 간 부의 격차를 더욱 크게 할 것이다. 86세대 안에서도 자산의 간극이 벌어지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부족한 노동력은 정년 연장 말고 다른 방식으로 해소를 모색할 수 있다. 지금까지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여성과 장애인을 일터로 끌어들이는 게 한 방법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30, 40대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많다. 경단녀를 꺼리는 기업 문화 탓에 눈높이를 크게 낮춰 단순노동을 하는 고학력 경단녀도 수두룩하다. 능력이 있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직장 문턱을 넘지 못하는 장애인도 곳곳에 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17년간 육아에 전념하다 45세에 정규직 공무원이 된 한국인 여성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이후에도 고속승진해 꽤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이 여성은 성공의 배경으로 자신의 노력과 함께 능력 있는 사람에게 차별 없이 일자리를 개방하는 문화를 들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시대에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년을 연장하는 것보다 그동안 구직 활동에서 차별받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86세대 기득권 집단에게 보너스를 주는 것보다 30, 40대 경단녀,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과 정의의 원칙에 더 부합한다.

권기석 사회부 차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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