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농사와 믿음으로 키운 6남매… 첫째는 목사, 둘째는 도지사

제주중문교회 54년 섬긴 원응두 장로 삶과 신앙

원응두 제주중문교회 원로장로(오른쪽)와 김춘년 권사가 지난 18일 서귀포시 중문동 제일농원에서 신앙으로 키운 자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귀포에서 60년 감귤 농사로 6남매를 키웠다. 큰아들은 하나님께 바치는 첫 열매란 의미로 목사가 됐고, 학력고사 전국수석과 사법고시 수석합격 기록의 둘째 아들은 도지사가 됐다. 여든 중반의 나이에도 감귤 과수원 일을 놓지 않는 원응두(85) 원로장로(제주중문교회)에게 신앙의 힘으로 키워낸 자녀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8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의 제일농원을 찾았다. 한라산 기슭 경사지 8264㎡(2500평)에 땀으로 일군 감귤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귤을 크기별로 분류하는 선과장 옆 자재창고에 원 장로와 부인 김춘년(85) 권사의 거처가 마련돼 있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단출한 살림살이다. 원 장로는 아침 과수원 일로 흙이 묻은 바지 차림이었다.

“모태신앙은 아닙니다. 저부터 믿기 시작했어요. 제주 4·3사건 때 살던 집이 불타 학업을 접고 생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고교 진학 대신 제주중문교회 성경구락부를 다니며 공부했어요.”

예수님을 본격적으로 만난 건 1953년 질병으로 고생할 때였다고 한다.

“병명도 모르고 시름시름 앓는데 서귀포엔 병원이 없어서 의생(醫生)을 찾아가니 무당을 데리고 굿이나 하라는 거예요. 제주도에 의료 시설이 변변치 않았지요. 병으로 고생하는 중에 당시 피난민들이 전한 빨간색 쪽복음, 요한복음 누가복음 등 사(四)복음서가 담긴 쪽지 성경을 매일 읽으며 마음이 변화되고 몸도 낫게 됐습니다. 이후엔 교회에 열심이었지요. 31세에 장로 임직을 받아 교회를 받든 지 54년째예요.”

원 장로의 장남은 제주하영교회 담임 원희정(61) 목사다. 장로회신학대를 나와 서울 등지에서 목회하다 3년 전 제주로 내려와 교회를 개척했다. ‘하영’은 ‘하나님께 영광’의 줄임말이자 제주 말로는 ‘많다’는 뜻이다. 등록 성도가 70명을 넘어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원 장로는 “신앙대로 첫 열매는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며 “개척 목회가 어렵지만 두세 사람이 모이더라도 열심히 신앙으로 이끌어 달라고 당부하곤 한다”고 말했다.

1980년 부부와 2남 4녀 전체가 모인 모습. 맨 뒷줄 오른쪽 교복입은 학생이 당시 제주제일고 재학 중이던 원희룡 제주지사이다.

차남은 원희룡(55) 제주지사다. 중문초 중문중 제주제일고 시절 내내 1등을 놓친 적이 없어 원‘일’룡으로 불렸다. 원 장로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성경 암송대회를 하면 산상수훈의 마태복음 5장, 주기도문이 담긴 6장,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로 시작하는 7장 등을 내리 외워내곤 했다”고 기억했다. 최근 한국방송 예능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원 지사의 일상이 방영되면서 원 장로의 제일농원 이야기도 전파를 탔다. 원 장로는 “식사 기도하는 장면 등은 편집돼서 볼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저희 때는 보수적 신앙이었죠. 6남매 전부를 새벽기도와 가정예배로 키웠어요. 주일예배는 당연한 거고 예배 후에도 외식을 삼가고 집에서 함께 성경공부를 했어요. 대신 학교 공부하란 말은 거의 안 했어요. 누가복음 2장 52절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말씀 그대로 아이들이 알아서 오순도순 사이좋게 자라나 줬어요. 딸들도 권사나 집사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죠. 손자 손녀를 합치면 여덟 명인데 신앙 안에서 자라게 해달라고 늘 기도합니다.”

원 장로는 한국 국제기드온협회 회원이다. 협회에서 발행하는 ‘신약전서와 시편·잠언’ 성경책을 직접 구입해 전도 대상자들에게 선물한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성경은 과거 원 장로가 회심하게 된 쪽복음을 떠올리게 한다. 제주를 벗어나 여행하면 본인이 직접 제작한 전도지를 꼭 챙긴다고 한다. 원 장로는 “아들 선거운동 때 명함 돌리는 것에 익숙해 지하철역에서 전도지를 나누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며 웃었다.

원 장로는 80년대 정농회에 가입해 지금도 무농약으로 감귤을 재배한다. 내외가 일할 수 있는 만큼만 수확해 전국 직거래로 생계를 이어간다. 예나 지금이나 산출의 20%는 보육원 유치원 복지시설 등에 나눈다. 원 장로는 ‘주의 영광’과 ‘인류 평화’가 가훈이라고 소개했다. 감귤 농사로 키운 목사와 도지사, 두 아들이 어렵더라도 이를 실천해 주기를 당부한다고 했다.

서귀포=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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