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검거된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쉽게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스무 명 살해 행각을 하나씩 추궁하면 “그날은 내가 시계를 찼던 것 같은데…” 하면서 숙제를 내주듯 증거의 실마리를 슬쩍 언급하곤 했다. 그런 진술이 나오면 수사관은 시계를 찾으러 다녀야 했고, 찾아오면 유영철은 그날의 범행을 늘어놓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를 기소한 검사는 “조사를 검사와의 머리싸움으로 여기며 재밌어 하더라. 게임하듯이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프로파일러들이 “악마를 보았다”고 말하는 연쇄살인범은 정남규다. 열세 명을 죽인 그에게 “범행 대상을 못 찾을 땐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예전 살인현장에 가서 눈을 감고 회상했다. 그러면 즐거워졌다”고 답했다. 프로파일러 권일용씨는 이 말을 듣고 그의 집을 다시 압수수색했다. ‘살인의 추억’을 간직해뒀을 거란 생각에서였는데 정말 장롱 서랍 밑에서 칼이 나왔다. 정남규의 집에는 권씨 사진도 보관돼 있었다. 프로파일링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스크랩한 것이 과학수사 서적과 함께 있었다. 언젠가 맞닥뜨릴 게임의 상대를 공부하고 있었던 듯했다.

2009년 검거된 강호순은 결국 열 명을 살해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증거를 가져오라”며 냉소로 일관하다 프로파일러가 투입되고 나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새벽 2시에 “그 형사(프로파일러) 좀 불러 달라” 하더니 살인 5건을 줄줄 자백했다. 자백할 상대를 지정한 건 게임 파트너에 대한 ‘예우’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새로운 게임의 시작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맨 처음 한 것은…” 하면서 특정 범행이 첫 살인이었음을 강조했다. 이후 여죄 수사 과정에서 그보다 앞선 살인이 추가로 밝혀졌다. 권씨는 “연쇄살인범이 감동을 받아 자백하는 경우는 없다. 그들의 자백은 ‘이쯤 되면 다음 단계를 진행해야겠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자백도 연속되는 게임의 과정이라는 말이다.

부산교도소의 화성연쇄살인 용의자를 경찰이 세 차례 조사했다. 공소시효가 지난 터라 강제수사권이 없어서 면담 형태로 진행됐다. 거부하면 그만인데 용의자는 네댓 시간씩 걸리는 면담에 꼬박꼬박 응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경찰이 찾았다는 증거를 감상하고 자신의 수를 다듬으면서. 강호순의 자백을 끌어냈던 프로파일러들이 투입됐다. 고통 속에 숨져간 이들을 위해 살인자의 실체를 밝혀주기 바란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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