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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이도경] 조국의 반칙과 정당한 분노… 하지만

대학입시 게임의 룰은 어떻게 바꿀 것인가… 공론화를 위해 방대한 입학생 자료 공개해야


조국 법무부 장관은 자식 농사에 ‘반칙’을 사용했다. 다른 여러 문제들은 제쳐두더라도 그의 딸이 문과 고교생 신분으로 인턴 2주 하고 썼다는 의학 논문 ‘출산 전후 저산소성-허혈성 뇌병증에서 eNOS 유전자의 다형성’이 세상에 알려진 뒤 변명의 여지는 사라졌다. 반칙이란 단어가 좀 심한가. ‘미성년 자녀 논문 공저자 2차 실태조사’ 결과를 담은 보도자료(2018년 4월 4일)를 소개한다.

교육부는 이 자료에서 “논문에 기여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논문에 저자로 표시되는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일갈했었다. 교육부 내 학문윤리를 관장하는 학술진흥과, 대학 입시를 총괄하는 대입정책과 공동 입장이었다. 조 장관 딸의 논문은 부당한 저자가 포함됐다는 이유 등으로 학계로부터 퇴출된 상태. 교육부 표현을 빌리면 조 장관 딸의 의학 논문 제1저자 등재는 법에서도 금지한 몹쓸 반칙 행위였다.

20대의 분노는 정당하다. 이들을 물심양면 뒷바라지하며 ‘대입 레이스’를 함께 뛴 50대의 분노 역시 이유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 설문 결과를 보면 19~29세의 72.5%가 ‘정시가 보다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직업을 학생으로 밝힌 응답자 73.5%도 정시가 공정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50대의 65.3%도 정시를 선호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중심으로 하는 수시 전형을 직접 경험해본 이들의 응답에는 현행 대입제도에 대한 강한 불신이 배어 있다. ‘내가 공정하게 뛰었나’란 의심이 조 장관의 반칙을 보며 ‘공정하게 뛴 게 아니구나’란 확신으로 옮겨가는 게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그 분노를 이해하고 응원한다. 분노는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다만 변화는 올바른 방향이어야 한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대입제도는 복잡하다. 정시 확대는 어떨까. 야당은 이미 정시 확대론을 들고 나왔다. 여당 내부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의원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강력한 정시 확대 지지 여론, 조 장관에 대한 실망과 분노,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연료로 정시 확대론이 활활 타오를 기세다.

손익계산서를 뽑아보자. 정시를 대폭 늘리면 입시의 객관성(공정성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은 높아진다. 점수로 판정하므로 결과에 승복하기도 쉽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조금씩 꿈틀대던 변화의 싹들은 밟힌다. 학생이 참여하는 토론 중심 수업, 옆에 앉아 있는 친구들과 문제를 해결해보는 경험을 공유하는 교육 현장은 사치가 된다. EBS 교재가 다시 교실에 올라오고 교사들은 “못 알아듣겠거든 수업 분위기 망치지 말고 엎드려 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충남 한 오지 마을의 경험을 하나 공유하고 싶다. 동네에서 ‘꼴통 집합소’ 취급 받던 학교에서 학종을 통해 고려대에 진학한 사례가 나왔다. 학교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후에도 몇몇 인(in)서울 대학생이나 지방 거점국립대 진학 사례가 나왔다. “엎드려 자던 과거 정시 시절이었으면 꿈도 못 꿨다.” 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동네도 바뀌고 있었다. “아이 공부 시키려면 도시로 가라”는 불문율은 깨져가고 있었다.

그럼 수시 강화가 답일까. 학생부 조작부터 교사가 딸들을 위해 정기고사 문제를 빼돌린 숙명여고 사태까지 나열하면 공정성을 훼손한 사례는 끝도 없다. 교육부가 조국 딸 파문으로 수상경력이나 동아리 활동 같은 비교과 비중을 줄이더라도 기대하긴 힘들다. 예컨대 면접 10%와 수능이나 내신 성적 90%인 전형이 있다고 치자. 만약 대학이 수능이나 내신을 반영하는 기본 점수를 85점으로 설정하면 면접 전형이 된다. 객관성을 가장한 주관적 평가. 악마는 늘 디테일에 있었다.

그럼 어쩌자는 거냐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 사회가 대입제도를 잘 모른다는 건 어렴풋이 안다. 정부에는 초등생부터 대학생까지 방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이른바 ‘스카이’(서울·고려·연세대)의 예비 엘리트의 출신 성분을 유추할 자료들이 있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 어떤 학교에 다녔고 수능은 몇 점이며 소득은 어떤지. 대입제도 변화와 이 데이터를 겹쳐보면 어쩌면 매력적인 해답이 나올지 모른다.

교육부는 이를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연구자들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부동산 가격 변동과 고교 서열화 조장 등 여러 명분을 들먹인다. 조국은 조국이고 입시는 입시다. 이번에 제대로 공론의 장을 만들어보는 건 어떤가.

이도경 사회부 차장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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