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9차 사건 용의자의 혈액형이 B형으로 특정된 탓에 O형인 유력 용의자 이모(56)씨가 애초부터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당시 진안리를 탐문 수사했던 형사 중 한 명은 이씨를 “어리고 착한 아이”로 기억하는 등 전혀 용의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남상국 전 화성경찰서 형사계장은 22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9차 사건 당시 피해자(김모양·13) 블라우스에서 용의자 정액이 발견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더니 B형이라고 했다”며 “이후 B형이 아니면 용의선상에서 아예 배제시켰다”고 말했다. 남 전 계장은 1989년 화성경찰서 태안파출소장으로 부임한 뒤 이 경찰서 형사계장으로 10년을 근무하면서 화성 사건 수사를 총괄했다.

그는 “8차 사건까지는 주변에 떨어진 우유곽 등을 통해 용의자 혈액형을 추정하는 정도였지만 1990년 9차 사건 땐 피해자 속옷 등에서 상당량의 정액과 백발 세 가닥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남 전 계장은 일각에서 ‘과거 수사팀이 용의자를 B형으로 특정한 적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 “수사를 직접 총괄했던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가장 잘 안다”고 반박했다.

남 전 계장은 당시 이씨의 본적지인 태안읍 진안리(현재 화성시 진안동) 일대를 탐문했던 형사 중 이씨를 또렷이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진안리를 이잡듯이 뒤진 형사 중 한 명이 최근 이씨가 유력 용의자라는 보도를 보고 ‘A씨(이씨의 친척 형) 동생은 나이가 어리고 착했는데…’라며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B형인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혈액을 채취했다. 유전자 감식비용이 1인당 20만원 정도 들었는데 어떻게 O형이라는 사람까지 채취했겠냐”며 “형사들이 이씨 형제 존재를 알면서도 수사선상에 안 올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과수가 지난 7월 5·7·9차 사건 피해자에 묻은 증거물을 재감식한 결과 용의자 DNA는 이씨의 것과 일치했고 O형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남 전 계장은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 이 유명한 사건 용의자가 B형이라고 해서 그걸 바탕으로 십수년을 수사했는데, 그게 잘못된 거라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남 전 계장은 1994년 이씨가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강간살인한 혐의로 체포됐을 때에도 화성경찰서에 있었다. 그는 “그 때도 아마 자료에서 O형이라는 걸 보고 따로 수사를 안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오랜 기간 이 사건 수사를 맡았던 방종찬 전 화성경찰서 형사계장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내 기억으로는 이씨가 수사 선상에 오른바 없다”며 “잡혔다고 했을 때 낯선 이름이라 놀랐다”고 말했다.

수배전단에 그려진 용의자의 몽타주와 이씨의 모습이 다소 다르다는 점도 당시 수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화성시 진안동에서 만난 주민 B씨(72·여)는 “뽀얀 얼굴의 이씨는 동네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양손을 배꼽에 대고 ‘안녕하세요, 어디에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하는 싹싹한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이씨의 친척형 A씨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씨는 평소 말이 없고 얌전했다”며 “걔가 무슨 내면에 그런 게(살인 동기) 있겠느냐”고 감쌌다.

또 당시 용의자는 목격자 진술에 따라 왼손 팔목에 문신이 있고 오른손 둘째 손가락에 물린 듯한 흉터가 있다고 그려졌다. 그러나 현재 이씨가 수감된 부산교도소 등에 따르면 그에게는 이런 문신과 흉터가 없다.

안규영 방극렬 기자, 화성=황윤태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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