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지 70년, 대부분 100세 안팎 고령자… 1년 안에 만나도록 남북이 주선해야
북한은 평균수명이 짧아 실제 상봉 가능 수백명 불과할 수도
죽음 눈앞에 둔 분들에게 무슨 절차와 정치적 고려 필요한가


필자가 정부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업무로서 처음 접한 때는 1989년 늦여름, 남북교류 업무를 제도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때 70대 중반의 어떤 노인이 정부청사에 찾아와 북에 두고 온 아들을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필자의 부친과 같은 연배인 노인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정부의 남북교류 정책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부청사를 찾았던 그 할아버지의 처연한 모습은 지금까지도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한 아픈 사연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안들을 추진했다. 우선 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를 설립해 이산가족 문제의 본격적 해결에 대비했다.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으로 북한과 협상하기도 했다. 그동안 적십자사 차원에서 21차례, 2만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민간의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이산가족들의 소원을 풀어주고자 이산가족 상봉 주선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이들의 주선으로 이산가족들은 1만회 이상 서신을 교환했고 3500여명이 제3국에서 북한의 가족 친지들을 만났다. 북한에 직접 들어가 그 가족들과 만날 수 있는 사정이 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도록 허용했다. 조그만 틈이라도 생기면 그것을 활용해서 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추석 전후에 이산가족 문제의 책임과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이산가족 문제가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 있는 데 대해 정부로서는 책임감을 느껴야 하며 이에는 달리 변명할 말이 없다고 할 것이다. 다만 그 일을 해봤던 사람으로서는 우리 정부의 잘못으로 이산가족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고 탓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산가족 문제만 나오면 역대 정부는 자동 항법장치가 작동하듯 만사를 제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북한에게 이 문제는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다. 정부의 여러 제안에 흔쾌히 호응하지도 않았다.

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가족상봉 희망자는 원래 13만여명이었다. 이분들이 고령으로 매년 3000~4000명씩 세상을 떠나 이제 5만명 정도 남아 있다. 그리고 이들도 대부분 80대 이상의 고령이다. 이산가족 찾기를 신청한 분들 중에는 부부나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40%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이야말로 혈육을 찾는 정이 가장 절절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별한 지는 벌써 7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만나고자 하는 아내와 남편, 부모님은 최소한 90세를 넘었거나 대부분 100세 내외의 고령이다. 북한은 평균 수명이 우리보다 짧다.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부부나 부모자식들이 얼마나 될까 의심된다.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서는 고령으로 기억이 희미해져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도 적지 않다.

가족상봉 대상자로 선정된 분들 중에서 상봉 포기자가 하나둘씩 나오더니 이제는 10%에 이르렀다. 이산가족 문제는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시간이 남지 않았다. 다른 경우는 뒤로 미루더라도 남북으로 헤어진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들만이라도 1년 안에 모두 만날 수 있도록 특별조치를 취해야 한다. 부담되는 일도 아니다. 헤어진 부부와 부모가 100세에 이르렀는데 살아 있다면 그것만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분들이 가족을 만나는데 무슨 정치적 고려가 필요하며 무슨 실무적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러한 이산가족이 모두 만난다 하더라도 현재 90세 이상의 인구비중으로 보아 몇 백 건이라도 될지 모르겠다. 남북한 당국은 당장 이들을 모두 만나게 주선해야 한다. 그것마저도 꺼린다면 어떻게 국민과 인민의 행복을 말하고 남북 관계 개선을 바라며 통일을 논할 수 있겠는가.

남북한은 표면적으로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것처럼 보인다. 남북분단사에서 남북한이 직접 대화를 시작한 것은 이산가족 문제 때문이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예비회담이 열린 이후 지금까지 무려 150회 넘게 여러 형태의 적십자회담이 열려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했다. 그렇게 해서 이산가족의 생사·주소 확인과 서신교환, 상봉과 재결합이 이산가족 문제 해법이라는 합의에 도달하기도 했다. 금강산에 상설면회소도 건설했다. 적십자 회담뿐만 아니라 수백 회의 중요한 당국 간 회담에서도 이산가족 문제는 빠지지 않는 의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이다. 가장 기초적인 전체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제안마저도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가족 간의 소식을 전하고 만나고 정을 나누는 일을 국가가 통제하는 꼴이 됐다. 가족 간의 사랑과 연대는 천륜이다. 가족 간의 만남을 정치가 방해하는 곳은 지구상에 한반도가 유일하다. 이러고도 우리는 문화민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문명국가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을까.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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