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국적을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국적은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숙명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국적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다. 부모의 국적을 물려받는 속인주의를 택한 국가에서는 귀화 등을 통해, 출생지주의(속지주의)를 택한 국가에서는 그 나라 영토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국적을 부여 받는다. 국제 교류와 인적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런 흐름은 점점 확산될 게 틀림없다. 개인의 필요에 따라 국적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마뜩잖은 이들도 있겠지만 개인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는 시선도 있다.

문제는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은 권리가 있지만 책임도 져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대신 납세, 병역 등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건강보험, 보육료 지원, 초·중등 의무교육 등의 혜택은 누리면서 외국 국적을 내세워 의무는 회피하려는 이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법이 정한 특별한 조건을 충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외 출산이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학, 취업, 상사원 주재 등의 이유로 해외에 머물다 출산하는 것은 하등 논란거리가 아니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식에게 외국 국적을 취득시켜 주기 위한 방편으로 악용하는 원정출산이다. 과거엔 양수 검사에서 남자아이로 판명될 경우 병역을 피할 목적으로 원정출산을 떠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복수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가 만 18세 이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병역을 이행하지 않아도 됐다. 2005년 5월 국적법을 개정해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했지만 원정출산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미국 캐나다로 떠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한 해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포털에서 알선 업체로 짐작되는 사이트가 여럿 성업 중일 정도다.

최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원정출산 논란이 관심사다. 예일대 재학 중인 아들이 1997년 미국 원정출산으로 복수국적을 취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여권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나 원내대표는 아들이 서울대병원에서 출생했고 복수국적자가 아니라며 강력 부인했다. 병원 출생기록과 출입국기록을 공개한다면 시중의 의혹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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