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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문록] 외롭게 견디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엘리베이터 오른쪽으로 두 번째 집에 나보다 큰 개가 살고 있다. 목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아마 나보다 몸집이 세 배는 클 것이다. 녀석은 정오 무렵이나 늦은 오후에 한 번씩 목청 높여 하울링을 한다. 우우, 우우. 녀석이 울 때마다 오후의 아파트 단지는 외로운 벌판으로 바뀐다. 마침 내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녀석이 울면 나도 같이 그 벌판에 서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집을 비우는 오후가 되면 아파트 단지에서 혼자 집을 지키는 개들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너덧 층마다 한 집이나 두 집 정도는 반려견이 있을 텐데. 해는 지고 어둠이 저벅저벅 몰려올 때 집집마다 현관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을 개들의 아파트.

도로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 나도 몇 번인가 하울링을 한 적 있다. 아오우. 목을 높이 치켜들고 달밤의 늑대처럼 짖었다. 내가 첫 하울링을 했을 때 누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더니 곧 나를 ‘땅콩늑대’라고 놀려댔다. 사람들은 사이렌 소리에 반응하는 개를 보며 비웃지만, 사이렌 소리가 하울링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건 모를 거다. 둘 다 주의(主意) 신호이자 경보(警報)이기 때문이다. 같은 층에 살면서도 저 하울링의 주인공을 마주친 적은 없지만, 덩치에 맞지 않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 녀석일 것이다. 언젠가 녀석을 만나면 들려줄 말이 많을 텐데.

외롭다는 거, 그건 어차피 정면으로 통과해야만 끝나는 주유소 자동 세차기의 폭우 같은 거다. 온몸이 폭풍우에 홀딱 젖어버릴 것만 같을 거야.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눈앞에서 핑핑 도는 거대한 기둥도 끔찍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몸이 덜덜덜 떨리기도 할 거야. 나는 떨고 있는 걸 보이기 싫어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짖어대곤 했지. 그렇지만 소용없었어. 도망갈 수도 없지. 끝까지 통과해야만 비로소 동굴 같은 어둠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제 갈 길을 갈 수 있고.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더라고. 그게 한 번 휘몰아치고 나면 오히려 깨끗해지는 거지. 눈앞이 탁 트이는 것 같고. 잡아먹을 듯 달려들지만 그들은 결코 내 안 깊은 곳까지 손을 뻗치진 못해. 그러니 벗어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야. 끝까지 참고 견뎌내는 것.

무언가를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견디는 것뿐이야. 버티는 것. 나도 왕도를 알려줄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그게 전부야. 피할 수 있고 도망갈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피하고 도망가도 돼. 누나가 나를 혼낼 때 처음엔 나도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고스란히 듣고 있었어. 나중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 그래서 그냥 침대 밑으로 쏙 도망갔어. 누나가 씩씩 화를 내며 쫓아왔지만, 나는 누나보다 잽싸고 누나는 침대를 들어내지는 못했지. 누나는 매번 “이놈의 침대, 다리 없는 걸로 바꿔버릴 거야”하고 침대를 향해 화를 냈지. 그리고 어느 날 정말로 침대를 바꿔버렸어. 내가 더이상 다리 밑에 숨을 수 없는 평상형으로. 하지만 괜찮아. 그땐 누나도 나도 나이가 들어서 웬만해서는 서로 싸우지 않게 되었거든.

그러나 언젠가는 피할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는 것과 정면으로 맞부딪히게 되기도 하지. 그럴 땐 별 수 없어. 버티고 견디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지나갈 수가 없는 거지. 지금은 혼자 외롭고 힘들겠지만, 여기 우리는 모두 네 편이라는 것만 기억해. 마침내 외로움을 이겨내는 자의 편.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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