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내년 6월 결혼 예정인 신지은(32)씨는 틈틈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주말마다 발품을 팔며 웨딩플래너 없이 직접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신씨 커플은 서울에 전셋집을 구하는 데 가진 돈의 대부분을 써야 했다. 벌이도, 모아놓은 돈도 비슷한 신씨 커플은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구태의연한 관습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양가 도움 없이 자립하는 데 뜻을 같이하고 나니 결혼 준비 중 걸리기 쉬운 ‘보태보태병’(조금만 보태면 더 좋은 것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예산보다 많은 지출을 하게 되는 행태를 빗댄 표현)을 피해야만 했다. 막상 플래너와 계약하면 ‘어디까지가 마케팅이고 어디까지가 플래너의 선의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주변의 조언도 컸다. 신씨는 “플래너의 도움을 받으면 편하겠지만 아무래도 더 좋은 조건을 권할 테고 예산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산 안에서 마음에 드는 선택을 하기 위해 번거롭더라도 직접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허례허식은 최대한 걷어내고 신씨처럼 합리적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결혼 예산의 대부분을 집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예산 안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풍토로 바뀌면서 관련 시장도 합리성을 앞세우는 분위기다. ‘부르는 게 값’인 이 시장에서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정찰제를 내세운 업체도 등장했다.

최근 결혼 트렌드의 가장 큰 특징은 ‘반반 결혼’이다. 결혼 준비와 관련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웨딩북’과 인터넷 카페 등을 보면 ‘반반 결혼’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결혼 준비 예산의 상당 부분을 남성이 부담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은 남녀가 비슷하게 예산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신혼집부터 신혼여행까지 모든 걸 소화하는 식이다. 남녀가 반씩 비용을 부담한다고 해서 ‘반반 결혼’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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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준비에 가장 큰 예산이 들어가는 항목은 집이다. 예비 신혼부부에게는 가진 돈을 합치고 대출을 받든 부모님 도움을 받든 가능한 재원을 총동원해 신혼집을 해결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집에 예산의 대부분을 쏟아붓고 나면 나머지 준비에 있어서는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그래서 과거의 허례허식은 현실에서 점차 내몰리는 분위기다. 불필요하거나 원치 않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신혼여행이나 가전·가구 등에 예산을 크게 할애하는 식으로 실리를 챙긴다.

이렇게 결혼 준비에 대한 젊은 세대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종종 부모 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과 상충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부모 세대는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녀 세대는 ‘허례허식’이라고 보는 경우에 주로 문제가 생긴다. 예단, 예물, 결혼식장 선택, 폐백 등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 때론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오는 12월 결혼 예정인 고은미(가명·33)씨는 최근 파혼을 고민했다. 예단 때문에 결국 사달이 났다. 고씨는 “정해진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남자가 집을 해오면 10% 정도를 예단 금액으로 정한다고들 한다. 우리는 둘이 모은 돈에 앞으로 갚아야 할 대출로 전셋집을 겨우 마련했고 부모님 도움을 전혀 안 받는데, 남자친구 부모님께서 예단을 1000만원이나 원하셨다”며 “엄마는 ‘해드리고 말자’는 의견이었지만 내가 팔려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드리면서까지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고씨의 사례를 보면 ‘(남자쪽 부모에게 드리는) 예단은 집값의 10%’라는 대목이 나온다. 결혼 관련 커뮤니티를 보면 종종 나오는 표현이다. 손익 계산을 확실히 하는 걸 선호하는 20, 30대의 특성이 반영된 세태이기도 하고, 여성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도 풀이된다. 고씨는 “부모님 뜻에 따라 예단을 하게 되면 예물로라도 그만큼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게 요즘 풍토”라며 “차라리 안 주고 안 받는 걸 가장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예비 신혼부부가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웨딩북 청담’에서 결혼 준비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웨딩북 제공

‘반반 결혼’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집값을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예단을 생략하거나 두꺼운 이불, 반상기, 한복 등과 같이 평상시 잘 사용하지 않는 ‘혼수 품목’들이 결혼 준비 목록에서 사라지게 됐다. 대신 숙면을 돕는 매트리스, 예비 부부의 취향에 맞는 전자제품, 인테리어 효과를 내주는 가구나 소품이 중요해졌다.

웨딩 시즌도 바뀌고 있다. 인기 있는 서울 강남권이나 시내 웨딩홀들은 짧게는 6~7개월, 길게는 1년 전부터 계약을 해야 식장을 잡을 수 있다. 인기 있는 식장을 좋은 시간대에 조금이라도 싸게 계약하려면 일찌감치 준비해야 한다. 예전엔 5~6월, 9~10월이 시즌이었다면 지금은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 예식을 선호한다. 이 시간대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계에서는 ‘웨딩 시즌이 없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유통업계도 달라지는 트렌드에 맞춰서 ‘웨딩 페어’를 준비하고 있다. 주요 백화점 등의 웨딩 페어 시기도 기존 10월쯤에서 7~9월로 앞당겨졌다. ‘웨딩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롯데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달 웨딩 페어를 마쳤다. 롯데 호텔, 인터컨티넨탈 호텔, 켄싱턴 호텔 등 호텔업계도 웨딩 페어를 7~9월에 진행했다. 일찌감치 결혼을 준비하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려는 전략에서다.

모델들이 신세계백화점 웨딩 행사에서 가전제품 매장을 둘러보는 모습. 신세계백화점 제공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14일 웨딩 행사를 시작했다. 최근 3년간 신세계백화점 월별·연령별 매출 비중을 조사한 결과 30대의 9월 매출 비중이 연평균(29% 안팎)보다 높은 31% 정도로 나타났다. 결혼 적령기인 30대가 본격 결혼 시즌인 10월을 앞두고 가전, 가구 등 혼수용품을 대거 장만한다는 분석에서 웨딩 행사를 평년보다 일찍 시작했다.

20년 넘게 웨딩업계에 종사한 한 관계자는 “합리적으로 결혼 준비를 하는 이들이 늘면서 이불이나 반상기 같은 예단 품목, 한복, 폐백이나 이바지 음식을 하지 않으면서 관련 업계가 타격을 받는 측면도 있다”며 “결혼하는 인구 자체가 크게 줄어들면서 전반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업계도 거품을 빼고 체질개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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