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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정진영] 목사의 삭발

삭발은 결기 드러내지만 약자의 마지막 수단… 성직자 무게 감안하면 확산되지 말아야


국민일보는 매주 수요일 오전 ‘국민가족 수요예배’를 갖는다.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고 창간된 국민일보가 오랫동안 이어온 직장예배다. 그날 아침이면 본사 11층 작은 예배당에는 회장, 사장 등 100명 안팎의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모인다. 예배에는 여러 교단의 목회자들이 와서 설교를 한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인사들이 대부분이지만 더러 진보적인 성향의 교역자들도 있다. 중진급 연배의 목사들이 주로 강단에 선다. 오랜 신앙생활과 목회경험에서 우러나온 메시지는 대개 감동적이다.

최근 수요예배에 온 목사들이 전하는 교회의 분위기를 들으면 무척 우려스럽다. 강원도에서 온 한 목사는 “조국 장관 논란 이후 지역이 거의 반반으로 나뉘었으며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사안에 대한 교인들의 입장이 ‘지지와 반대’로 극명해졌으며 담임목사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정서가 많다고 말했다. SNS 등을 통해 수시로 관련 내용을 보내오는 신도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대형 교회 담임목사는 “신도들의 정치적 경향성이 워낙 강하다”며 “강단에서 정파성이 있는 메시지는 일절 전하지 않지만 외부의 과도한 파당적 행태가 교회 내에도 밀려들어 오는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조국 장관 파문이 한국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조 장관 이슈를 본격적으로 발화시킨 과정에 교계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사안을 증폭시킨 인물이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고, 그는 조국 임명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한 교계단체 이사장이다. 교회가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수 있고, 목사와 신도가 이념적 발언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최근의 양상은 지나친 것 같다.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치권처럼 조 장관을 둘러싼 부딪힘이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목사와 신도, 신도와 신도 간의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지방의 한 목사가 조국 퇴진을 촉구하며 삭발을 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당사자가 기독교계 지도급 인사라는 점에서 파장이 있을 수 있다. 목회자의 삭발은 과거 여러 차례 있었다. 작년 8월 정부의 국가인권기본정책(NAP) 폐지를 촉구하거나 2006년 사학법 개정을 반대할 때처럼 한국교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1975년 문동환 목사의 삭발은 유신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수단으로 인식됐다. 성직자의 삭발은 정치인들의 퍼포먼스와는 격이 다르다. 영향력이나 파급효과가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크다. 득실을 따지는 정치인의 셈법이 아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는 ‘오직 믿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행보보다 신중하고 무겁게 결행돼야 한다. 지지하는 측은 삭발이 교회 공동체와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관 한 사람의 거취를 두고 목회자가 삭발까지 한다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다. 사학법, 국가인권기본정책, 민주화 같은 현안에 비해 명분이 약한 듯싶다.

삭발은 단식과 함께 가장 평화적이면서도 강력한 결기를 드러내는 행위다. 약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비상수단이다. 조 장관의 경우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검찰 개혁을 위해 그가 필요하다는 생각 또한 적지 않다. 정치적 관점에 따라 판단이 갈린다.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결단임을 잘 알고 있으나 성직자 삭발이 갖는 엄중한 무게감을 생각할 때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교회연합은 지난 20일 호소문을 통해 “정의와 공의가 무너지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첫 번째 사명은 기도”라고 강조했다. 다음 달 3일 서울시청 앞에서 대대적인 기도회가 열린다. 현재 상황이 총체적인 위기라고 판단하고 전국의 한국교회가 한자리에 모여 기도회를 개최한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날 행사가 다른 기도회와 달리 축사, 격려사 등 의례적인 순서 없이 ‘기도하는 일’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색채 또한 배제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혼돈은 사람에서 비롯된 것이나 이를 푸는 자는 하나님이다. 삭발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후순위 방도다. 최선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과정인 기도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기도가 절실하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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