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그는 괴로워했다.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저 멀리 날아가 버릴까봐. 탈모에 효과 있다는 샴푸와 두피마사지 제품을 다 써봤지만 효과는 없었다(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6월 탈모치료와 예방 효과가 있는 의약품처럼 알린 허위·과대광고 2248건을 적발했다).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머리카락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두뇌를 덮어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탈모가 이 기능을 못하게 하는 것 따윈 하나도 슬프지 않다. 실제로 머리카락이 뇌 보호에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건 스티브 잡스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브 발머 같은 최고의 천재들이 대머리였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탈모의 비극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데 있다. “대머리는 총을 한 방밖에 못 쏴. ‘두발’이 없기 때문이지.” “대머리에겐 매력이 있어. 그건 바로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 “대머리 중엔 나쁜 사람이 없어. ‘모(毛)’난 사람이 없거든.” 온라인 커뮤니티엔 탈모인을 향한 창의적인 조롱이 수두룩하다.

탈모인은 머리가 풍성한 이들의 놀림이 괴롭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머리가 빠졌더라도 탈모가 이렇게까지 놀림거리 취급을 당해야 했을까? 결국 탈모의 비극 역시 소수자가 겪는 비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탈모 관련 지표들이 심상찮다. 탈모 환자 수는 2015년 20만8534명에서 지난해 22만4688명으로 늘었다. 이건 보험급여가 적용된 사람들만 센 것일 뿐 대부분의 탈모인은 병원에 가지 않거나 비급여 치료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대한탈모치료학회는 잠재적 탈모 인구를 1000만명으로 추산한다. 대표적 탈모 치료제 프로페시아의 매출액은 2016년 355억3400여만원에서 지난해 408억8600여만원으로 증가했다. 업계에선 탈모 관련 시장 규모가 매년 14% 정도씩 증가해 현재 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대머리는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탈모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취급을 받는 걸까. 숨을 쉬다가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갔다든가 하는 불쾌한 경험들을 저마다 갖고 있기 때문일까. 제5공화국 시절 대통령(전두환)과 용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이 금지됐던 한 탤런트는 이렇게 토로하기도 했다. “대머리가 무슨 죕니까!”

그런데 풍성한 머리카락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그걸 굳이 다 잘라버리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머리를 미는 경우다. 앨버트 맨즈 미국 와튼스쿨 박사는 남자가 머리를 싹 밀면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게 보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었다. 영화배우 율 브리너(1920~1985)는 1956년 영화 ‘왕과 나’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뒤 내내 삭발 상태로 지냈다. 브루스 윌리스, 빈 디젤, 드웨인 존슨도 민머리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배우들이다. 우리나라에선 김광규가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탈모 증세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차라리 시원하게 밀어버린 경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삭발하는 경우다. 부진에 빠진 스포츠 선수의 삭발이나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비장한 각오로 머리를 미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탈모인들은 ‘그냥 속으로 결의 다지면 됐지 무슨 삭발까지 해. 배부른 짓, 아니 머리 숱 풍성한 짓 하고 있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약자들이 투쟁하기 위해 삭발을 하기도 한다. 자기를 학대함으로써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해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삭발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시각적 효과도 취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탈모인들은 가소롭게 생각할지 모른다. 단식투쟁처럼 고통이 수반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들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그만큼 절박하니까 삭발도 하는 것이겠지만 이게 2019년에도 먹힐지는 의문이다. 얼마 전 국회의원들의 릴레이 삭발 퍼포먼스가 있었다. 결연한 저항의 수단으로 삭발을 한 것이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오히려 민머리를 희화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탈모인들은 이런 상황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대머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소수자일지 모른다.

이용상 뉴미디어팀장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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