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가슴 벅찼던 첫 ‘홀리위크’… 평생 반려 얻는 축복까지

최상일 목사의 ‘민족의 예배를 회복하라’ <2>

최상일 서울 은정감리교회 목사(왼쪽)가 2010년 6월 서울 관악구청에서 열린 관악구기독교총연합회 집회 후 특송을 한 청년들과 함께했다.

거리에서 찬양하고 전도하는 모임을 가진 지 어느덧 5년째인 2009년 가을이었다. 하나님께서 청년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사인을 주셨다.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을 준비시키려고 기도하게 하시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형식과 장소를 제대로 갖춘 기도회로 인도하신 게 아니다. 그곳은 엉뚱하게도 서울대 잔디밭이었다. 처음엔 무엇을 놓고 기도할지 잘 몰라 서울대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서울 관악구를 위해,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하얀 눈밭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몰랐다. 하지만 반년 동안 그저 순종하면서 그해 겨울을 보냈다. 일종의 훈련이었다.

지금은 소천하신 아버지(최덕순 목사)가 2010년 관악구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이 되셨다. 아버지가 대표가 되신 후 연합회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나도 청년들과 함께 관악구 교계의 이런저런 행사들을 돕고 섬겼다. 그러다 보니 청년 모임에 명칭이 필요하게 됐고 자의보단 타의에 의해 관악구기독청년연합회라는 명칭을 붙이게 됐다.

이 단체가 ‘홀리위크’를 주최하는 서울기독청년연합회의 모체다. 서울기독청년연합회는 누가 단체를 만들어 무엇을 하려는 인간적 계획 속에 생겨난 단체가 아니다. 그저 묵묵히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지키던 중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모임이다.

관악구기독청년연합회는 관악구 내 교회를 순회하며 기도 모임을 시작했다. 그러자 부흥을 갈망하는 청년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대다수 청년이 자신의 성공과 야망을 위해 분주하게 지내는 분위기에 정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은 부흥을 갈망하며 간절한 기도의 시간을 이어갔다. 이 모든 시간은 우리도 모르게 홀리위크를 준비하는 시간이 됐다.

이 무렵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면 할수록 의문이 생겼다. ‘그토록 부흥을 원하고 부흥이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는데, 왜 부흥이 오지 않을까.’ 그래서 부흥의 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찾아봤다. 해답은 의외로 단순한 데 있었다. 기도였다.

부흥을 원하면서도 부흥의 시대에 있었던 만큼의 기도와 희생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게 이유였다. 특히, 부흥을 촉발한 집회들은 지금처럼 하루 이틀의 이벤트성 집회가 아니라 1주일 이상 전폭적으로 기도하는 집회가 개최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아, 그럼 1주일 동안 기도하는 집회를 한번 열어보자.’ 그리고 거룩한 한 주간을 의미하는 홀리위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매년 1주일 동안 예배를 연다는 구상을 했다. 이런 상상을 하자 갑자기 심장이 뛰고 벅차오름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방을 서성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굉장한 일들이 이미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청년들에게 이 비전을 나누니 모두 좋다고 했다.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관악구기독청년연합회 주최로 관악구 청년을 대상으로 집회를 준비했다. 기도회를 1일부터 시작하고 싶어 1일이 월요일인 달을 찾았다. 2010년 제1회 홀리위크는 11월 1일부터 1주일간 열렸다.

첫 시간부터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있었다. 개인의 영적 만족을 위한 집회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집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더욱 크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특히 선친이 인도하셨던 금요일 저녁 집회에는 더욱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있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집회였는데도 많은 이들이 병 고침의 은혜를 경험하고 여러 은사를 받았다. 청년들은 강단에 나와 눈물로 헌신하겠다고 결단했다.

개인적으로도 첫 번째 홀리위크는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예배 특주를 위해 해금을 연주하는 자매를 섭외했다. 그 자매는 연예기획사에 속해 있었지만, 사례비도 받지 않고 홀리위크를 매일 특주로 섬기겠노라고 자원했다. 청년기에 10년 넘게 교회를 떠났던 자매였는데 홀리위크를 통해 큰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그 자매는 마침 미국 LA 벤츄라감리교회 담임목사이자 강사였던 작은 형(최상훈 목사, 현 서울 화양교회 담임)의 안수기도를 받았다. 방언을 받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간증자로 나섰다.

당시 나는 서른여덟이 되도록 결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청년사역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주님을 위해서라면 결혼하지 않아도 좋습니다”라고 기도하곤 했다. 그런데 오직 주님만 위해 살겠다고 섬겼던 홀리위크에서 만난 자매와 마음이 맞은 것이다. 만난 지 3개월 만인 이듬해 2월 결혼했다.

아내(김은성 사모)는 대중음악 활동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교회를 섬기며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홀리위크를 전심으로 섬긴 수많은 이들의 삶 속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이 놀랍게 성취되곤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내가 먼저 그 축복을 경험한 셈이었다.

최상일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