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순 (4) ‘중학교 마크 붙은 교복’ 보자 눈물이 왈칵

학비 없어 진학 포기하고 막막한 때 평소 아껴주시던 음악 선생님 등록금 내주시고 교복까지 선물로

박종순 목사가 졸업한 전북 부안 백산중학교의 현재 모습. 박 목사가 다녔던 학교는 현 교사에서 4㎞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이 다가왔는데, 집안 분위기가 이상했다. 어머니가 중학교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누나들도 마찬가지였다. 온 가족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고민에 빠졌다.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지. 설마 가지 말라는 건가. 입학시험 합격할 실력도 되는데….’

친구들은 중학교 입시를 준비한다고 난리였다. 정작 공부를 잘해 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됐던 나만 제자리걸음이었다. 초조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어머니, 저….” 말을 시작도 안 했는데 어머니가 내 말을 잘랐다. “종순아, 미안하다. 중학교 보낼 형편이 안 되는구나. 일단 1년만 쉬었다가 형편을 좀….”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무작정 집 밖으로 뛰어나왔다. 초가을이었지만 시골이라 찬바람이 불었다. 어두운 논두렁을 무작정 달렸다. 어머니 말씀은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중학교에 가지 말라니…. 당시는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었다. 학비를 내야만 다닐 수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은 중학교 학비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목사가 되라면서, 중학교도 안 보내면 어떻게 목사가 되란 거야.’ 불만이 터져 나왔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일단 시험은 보기로 했다.

시험날이 되자 6㎞를 걸어 시험장에 도착했다. 왠지 친구들 보는 게 민망해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서둘러 교실로 돌아왔다. 문제는 쉬웠다. 그럴수록 절망은 깊어졌다.

시험을 치르고 해가 지났다. 친구들은 새로 산 교복을 자랑했다. 새 책가방을 샀다며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언제나 당당했지만, 중학교도 못 갈 상황이 되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2월 중순쯤이었다. 날 아껴주던 초등학교 음악 선생님이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만나자마자 근처 고깃집으로 가는 게 아닌가. ‘고기를 사주시려나’했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선생님은 고기 두 근을 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종순아, 미안한데 고기 좀 내 하숙집에 가져다줄래.” ‘이게 무슨 소리지. 가난하다고 놀리는 건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춥고 배고픈데 난데없이 심부름을 시키다니, 눈물이 흘렀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은 뜨거웠다.

문득 서러웠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그리움은 짧았고 원망은 길었다. 고기는 선생님 하숙집 방 안에 던져놓았다.

며칠 후 그 선생님이 또 날 보자고 했다. ‘참을 수 없어. 한마디 해야겠다.’ 이런 다짐으로 약속장소인 학교로 갔다. 굳은 표정으로 교실 문을 열었더니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 계신 게 아닌가. “가까이 오거라.” 그러더니 큰 종이가방을 건네셨다. “종순아, 꺼내봐라. 선물이다.” 검은색 교복이었다. 모자도 나왔다. 백산중학교 마크가 붙어있었다. 기쁨의 눈물이 쏟아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종순아, 내가 그 학교 교장과 친구다. 널 추천했다. 그날 고기 잘 가져다 줘서 고맙다. 심부름했다고 중학교에 보내주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날 안아 주셨다. 음악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등록금을 내주시기로 한 것이었다. 교복도 이분들의 선물이었다. 주님은 내게 천사들을 보내주셨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