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인원을 추산하는 데는 페르미 추정법을 쓴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기초적 지식에 합리적 추론을 더해 근사치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에서 세계 최초의 핵실험이 이뤄졌을 때 페르미는 핵실험장에서 17㎞ 떨어진 곳에서 폭발에 따른 폭풍으로 종잇조각들이 움직인 값을 측정해 폭발력이 TNT 1만t에 맞먹는다고 분석했다. 실제 폭발력은 2만t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경찰이 집회 인원을 추산할 때는 3.3㎡(1평)당 인원을 집계해 전체 면적으로 환산한다. 앉은 집회의 경우 평당 5~6명, 선 집회는 9~10명 정도로 계산한다. 이 방식대로라면 100만명 집회의 경우 연좌 집회는 대체로 20만평, 입식 집회는 10만평의 공간이 필요하다.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면적(9만4000㎡)의 각각 7배와 3.5배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1956년 5월 3일 제3대 대통령 선거 때 신익희 후보의 유세에는 지금은 없어진 한강백사장에 30만명이 운집했다고 전해진다. 71년 제7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장충단공원 유세엔 100만 인파가 모였다고 회자된다. 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5·16광장 전도대회에는 12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중 최대였던 2016년 12월 3일 6차 집회에 232만명이 참석했다고 주최 측이 밝혔다. 하지만 경찰 추산은 42만명이었다. 이듬해 1월 7일 11차 집회는 주최 측 64만명, 경찰 추산 3만8000명으로 17배나 차이가 났다. 이 문제가 정치적 논란을 빚자 경찰은 이후 추산치 발표를 중단했다. 경찰의 추정법은 경찰병력 운용에 초점을 맞춰 최대 인파가 모인 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하지만, 주최 측은 집회에 들고난 인원까지 포함해 계산한다.

지난 28일 열린 검찰개혁촛불문화제 참석 인원을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주최 측은 200만명 넘게 참가했다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수백만명이 모일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행사 주최 쪽은 참여자 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치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니다. 87년 6월 항쟁 때는 한곳에 1000명이 모이기도 힘들었다. 집회 인원이 수백명을 넘거나 구호가 격렬해지면 여지없이 경찰이 최루탄을 쏴 집회를 해산시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주화 요구는 서울 도심과 전국 곳곳에서 터져나와 군사정권이 도저히 막을 도리가 없었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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