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하도리안의 팽나무 3그루가 9월 22일 17호 태풍 타파가 지나간 뒤 잎 80%가 떨어지거나 누렇게 마른 채 매달려 있다. 적어도 24시간 이상 강한 바람에 날리다 견디지 못한 것이다. 수령이 15년 정도 된 이 팽나무는 사실 태풍이 오기 며칠 전 3~4일 강하게 분 북동풍 때 이미 상당 부분 피해를 입었다. 제주 동북쪽 끝에 있는 구좌읍 바닷가는 북동풍이 불면 파도가 크게 일고 그 파도가 만든 포말이 이슬처럼 부서져 염분과 함께 날아 온다. 이 염분을 맞은 잎은 죽게 된다.

다른 해에는 북동풍에 의한 염분 피해로 잎이 죽고, 다시 나오고, 또 죽고, 다시 나오기를 3차례 반복한 적도 있다. 올해는 그나마 북동풍 염분 피해를 한 번도 입지 않고 잘 자랐는데 이번에 처음 잎을 잃었다. 지금도 나뭇잎이 떨어진 뒤 큰 줄기 눈에서 새싹이 나오고 있지만 이미 10월로 접어들었고 그나마 18호 태풍 미탁이 쓸어버렸다. 잎이 왕성하게 자라지 못하고 떨어지고 새로 나오고를 반복하다보면 나뭇잎이 탄소동화작용을 할 기회가 적어진다. 탄수화물을 뿌리나 줄기에 축적하지 못하며 나무의 기력은 서서히 약해진다. 4년 전 4그루를 심었는데 올봄 한 그루가 결국 싹을 틔우지 못하고 죽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집을 지으면 느티나무를 꼭 키우고 싶었다. 가지가 늠름하게 뻗어가는 나무의 기세와 가을에 아름답게 물드는 단풍이 참 좋다. 육지에서 마을 입구에 크게 자란 느티나무는 동네사람들 모여 쉬는 곳이다. 제주에서는 그 역할을 팽나무가 한다. 제주말로는 ‘퐁낭’이다.

제주도 곳곳에는 이 팽나무가 마을 이정표처럼 자란다. 바다와 가까워 바람이 심한 곳은 가지가 한쪽으로만 뻗어가는 편향수가 되기도 한다. 내가 사는 하도리 옆 종달리에는 마을에 남아 있는 팽나무를 차례대로 찾아가며 구경하는 ‘퐁낭투어’코스를 만들어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와 보면 우리 집처럼 바닷가에 근접한 곳에서 잘 자라고 있는 팽나무는 보지 못한 것 같다.

하도리안을 설계할 때 조경은 제주도 토종나무를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팽나무를 주 조경수로 하고 마당 곳곳에 가을에 노랗게 익는 귤나무를 심었다. 이들 나무 외 제주에서 가로수로 심으며 빨간 열매가 맺는 먼나무, 동백나무 등을 더 넣었다. 첫해 겨울을 나고 귤나무 10그루가 염분과 바람 피해로 모두 죽었다. 동백나무도 이듬해까지 살아남지 못했고 나머지 나무들도 지금은 없다. 그나마 4년 째 버티고 있는 것이 팽나무 3그루다.

첫해 겨울 북서풍이 몰아치는 밤이면 나는 그 바람을 맞고 마주 서 있는 팽나무를 붙잡고 조금만 더 버텨 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너무 힘든 환경에 나무를 심어 고생시키고 있구나 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처음 심었을 때 가지치기로 나무 크기를 줄였는데 바람을 많이 타는 게 안타까워 이듬해 한 번 더 가지치기로 몸집을 작게 했다. 올해는 그나마 많이 뻗은 잔가지를 살려보기 위해 귤농장에서 바람막이로 많이 쓰는 나이론 망사를 씌우면 좀 유리할까 생각 중이다.

제주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팽나무는 그에 적응하는 생존본능 DNA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 팽나무가 바람에 견딜 만큼 몸집을 줄이든 바람을 피하는 방향으로 가지를 뻗든 어떤 행태로든 살아남겠다는 그의 본능이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박두호(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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