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품은 인문학 프로그램 “그림책 통해 치유 받았죠”

[새로운 교회 공동체] 군포 갈릴리교회

경기도 군포 갈릴리교회가 운영하는 갈릴리작은도서관에서 지난달 30일 ‘그림책과 함께한 월요일’ 강좌가 열렸다. 수강생들은 주제에 맞춰 선택한 그림책을 읽은 뒤 떠오른 이미지를 그렸다. 갈릴리교회 최원경 목사(사진 뒤편 가운데)도 이날 강의를 참관했다. 군포=강민석 선임기자

책상 위에 그림책들이 놓여있다. 색연필 크레파스 마커펜 등 그림 도구도 있다. 초등학생에게나 어울릴 법한 이곳에 30~50대 여성 6명이 둘러앉았다.

강사의 강의를 듣고 그림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느새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한다. 쓰고 싶은 메시지를 적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경기도 군포 금산로 갈릴리작은도서관에서 매주 월요일 열리는 ‘그림책과 함께한 월요일’ 강좌 풍경이다. 어린아이나 볼 법한 그림책을 다 큰 어른이 읽는 것도 이채로운데 책 속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이야기에 자신의 감정을 대입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이색적이다. 지난달 30일 강좌의 주제는 ‘가을 그림책’이었다.

수강생 이은아(49)씨는 “아이들의 전유물일 것 같은 그림책을 통해 어른도 치유를 받는다”면서 “그림을 그리며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힘든 것을 잊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은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는 갈릴리교회(최원경 목사)다.

아이를 위해 어른들의 회복에 나서다

갈릴리교회는 지역아동센터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건물 2층에 자리한 작은도서관 속 인문학 프로그램이다. ‘은퇴자를 위한 인문학 교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테라피’ 등 11월까지 예정된 프로그램 제목만 봐도 호기심이 간다.

응급의학과 의사로 ‘의사가 뭐라고’란 책을 쓴 곽경훈씨나 2019 이상문학상 대상작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를 쓴 윤이형 작가 등도 ‘작가를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모두 무료다.

최원경 목사가 처음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인문학 프로그램을 제공한 건 아니다. 2000년 개척한 후 초기에는 문화사역에 집중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지 않았고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다.

“주일학교에 나오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어느 날 절 찾아왔어요. 교회에서 목욕할 수 있게 해 달라더군요.”

그래서 마을을 둘러봤다. 도시 외곽의 낙후된 지역인 이곳에는 목욕할 곳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후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과 미용실을 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또 한 번 놀라운 일을 겪었다.

“여자아이의 속옷을 챙기기 위해 집으로 갔어요. 어머니는 낯선 남자가 딸과 함께 들어와 속옷을 달라고 하는데 놀라지도 않고 누워있어요. 아이들이 방치돼 있었죠.”

2001년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만들었다. 기적도 경험했다. 찾는 아이가 늘어 2004년 3층으로 확장·이전하려고 했지만, 재정적 여유가 없었다.

“갑자기 정부가 공부방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어요. 대기업들도 참여했죠. 그때 삼성전자 희망공부방에 지원서를 냈어요.”

공부방 리모델링에 필요한 금액이 2000만원이었는데 딱 그만큼 지원받았다.

이듬해엔 지역아동센터가 돼 정부 지원까지 받게 됐다. 아이들에게 밥도 주고 공부도 시켜주는 공부방이라는 소문을 듣고 지역 복지관 직원이 적극적으로 시청에 알린 덕이다. 이후 센터는 양질의 교육프로그램까지 제공하면서 정원 30명을 꽉 채웠다. 대기자까지 생겼다.

도서관도 만들었다.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인문학적 감성을 키우는 장소로 만들기로 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아동센터에서 잘 돌보던 아이들이 방학이 끝나서 돌아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어요. 가정폭력 등 온전치 않은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을 회복하려면 그들의 부모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가 내놓은 인문학 교육 코스를 모델로 삼았다. 쇼리스는 ‘사람들이 왜 가난한가’를 연구하던 중 한 흑인 여죄수로부터 할렘가에서 나고 자라 미술관, 음악회에 가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빈민들에게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코스를 만들었다.

갈릴리작은도서관도 주민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입소문을 타니 다른 지역 사람들도 찾았다.

이날 프로그램을 진행한 그림책 활동가 이문주(51)씨는 “6개월만 하려던 걸 수강생들의 요청이 많아 1년으로 늘렸다”며 “내년엔 자신만의 그림책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마을에 인문학을 심는다

최 목사는 지역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인문학 DNA를 이식한 데서 나아가 마을 전체에 인문학을 덧입힐 계획이다. 바로 특화 거리 조성사업을 통해서다. 지역 주민들도 공감하고 있다.

“딸기 마을, 공예 마을처럼 특화된 아이템이 있어야 하는데 여긴 없어요. 그래서 저희 인문학 프로그램에 있는 그림책을 떠올렸죠.”

실제 갈릴리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의 주요 아이템들은 그림책이다. 황진희 그림책테라피연구소장이나 박찬응 그림책박물관공원 추진단장, 김지연 그림책 작가 등이 강사로 나와 다양한 주제로 강의한다.

“떡집엔 떡과 관련된 그림책, 애견숍엔 동물이 나오는 그림책을 두면 어떨까 싶어요. 이 마을에 있는 공방, 인형극단과 협업해 관련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도 좋고요.”

이 모든 사업을 후원금으로 운영하다 보니 어려움은 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월세는 여전히 밀리고 있어요. 하지만 온 교인이 지역을 섬기자는 마음으로 함께했어요. 덕분에 요즘 들어 마을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오시기 시작했어요. 20년 동안 뿌린 씨가 열매를 맺는 기분이에요.”

군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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