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운 좋게 ‘풀(POOL·공동취재단) 기자’로 들어가게 됐다. 청와대 출입기자 전체를 대신해 단 4명의 취재기자만 정상회담에 들어가는 것인 만큼 부담이 작지 않았다. 현안이었던 북·미 협상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메모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질문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두발언 뒤 질문을 몇 개 받겠지만,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아마 질문 공세를 퍼부을 것이라고 했다.

예상대로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끝나자마자 백악관 기자들은 ‘프리스타일’로 질문을 쏟아냈다. 청와대 기자 중 한 명이 능숙한 영어로 질문을 했지만, 질의응답 시간 대부분은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기자들에게 돌아갔다. ‘한·미’ 정상회담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기자들도 ‘한국어’로 질의응답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총기 규제’나 ‘이라크 바그다드 로켓 공격’ 등 정상회담과 관련 없는 질문도 나왔다.

‘Come on press, Let's go(이제 그만! 나가자)’라고 외치는 백악관 직원들의 통제에 따라 회담장에서 빠져나온 뒤엔 묘한 허탈감이 들었다. 허탈감은 곧 백악관 기자들의 전투적인 질문에 대한 부러움으로 변했다.

청와대 공식행사, 특히나 대통령이 타국 정상과 만나는 회담에서 기자가 예정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역대 정권이 다 마찬가지였다. 물론 언론 문화나 취재 관행은 차이가 있고, 백악관 스타일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답을 얻기 어려운 질문을 굳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으면서 분위기를 망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백악관이 부러운 것은 ‘질문의 기회’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매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다. “지켜보자(We’ll see)”고 둘러대는 말도 많지만, 그래도 질문을 받는다. 문 대통령은 최근 한국기자협회 창립 55주년 영상축사에서 시인 김수영의 발언을 인용하며 “언론 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은 없다”고 했다. 그 언론 자유의 핵심은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는 권리다. 청와대엔 대통령의 뜻을 대신 전하는 ‘핵심 관계자’, ‘고위 관계자’들이 있지만,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대통령의 ‘진짜 속마음’이다.

온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는 ‘조국 사태’에 대해서 문 대통령은 몇 차례 입장을 냈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왜 굳이 조국이어야 하는지” 직접 물어볼 수 없었다.

백악관만 50년 가까이 출입하며 존 F 케네디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헬렌 토머스는 “기자는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질문을 하고 책임을 지게 만드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백악관 기자실 맨 앞줄에 앉아 쏟아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대통령께서는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모니카 르윈스키와는 관계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을 거북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르윈스키 스캔들 당시 클린턴에게)” “석유 때문이 아니라면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는 뭡니까?(이라크 전쟁 당시 부시에게)”

토머스는 ‘기레기’ 따위의 비난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백악관의 맨 앞줄에서’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만일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거든 기자 직종엔 뛰어들지 말라”

토머스만큼 출입 경력이 길지도 않고, 예리한 질문을 할 강심장도 아니지만 기자도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대통령님, 조 장관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조 장관 본인에 대한 검찰 기소입니까? 아니면 대법원 확정판결입니까?” 청와대 출입 100일을 앞둔 기자는 청와대 브리핑실 맨 뒷줄에 서서, 최대한 공손하게 물어보고 싶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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