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렵게 성사된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됐다. 북한 대표 김명길은 성명과 질의응답을 통해 결렬 사유를 밝혔고, 미 국무부 대변인 모건 오테이거스도 ‘대북 협상’이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냈다.

자세한 결렬 사유는 추후 알려지겠지만 북·미의 성명을 통해 각자의 입장을 유추할 수 있다. 북한은 선 상응조치, 후 비핵화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은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북부 시험장 폐기, 미국 유골 송환 등의 조치를 했으므로 “미국이 성의 있게 화답하면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들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9·19 평양공동선언으로 돌아가 5조 2항인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를 재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하노이 정상회담 때보다 후퇴한 것이다. 당시 북한은 회담장을 떠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영변 핵시설 전체를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실무회담에서는 미국의 선 조치가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미국에 방대한 선 조치 목록을 제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명길은 ‘생존권과 발전권’을 거듭 언급하면서 구체적으로 미국의 제재 조치와 합동 군사훈련, 전략자산 전개 등을 비난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때 요구한 경제제재 해제는 물론 생존권이라는 명목 하에 각종 체제 안전보장 조치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다시 한 번 비핵화의 정의가 북한 비핵화가 아닌 ‘조선반도 비핵화’임을 확인했다. 김명길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18년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리하면 북한 입장은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김명길의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은 미국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제도적 장치를 완전무결하게 제거하려는 조치를 취할 때만이, 그리고 그것을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발언에 함축돼 있다. 미국의 대북 제재와 군사적 조치의 완전한 제거가 행동으로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4개 핵심 사안 각각에 대해 진전을 이루기 위한 많은 새로운 계획에 대해 미리 소개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집중적인 관여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정의, 최종 목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상응조치를 포함한 단계적·동시적 접근 형태로 판단된다. 다만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상응조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제도적으로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기제 마련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협상 결렬의 책임을 일방에게 묻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공개된 발언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북한이 합의 도출보다는 결렬에 비중을 두고 나왔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모든 조치가 선행돼야 비핵화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당장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은 성명 말미에 미국에 “연말까지 좀 더 숙고해 볼 것을 권고했다”면서 대화의 여지는 남겼다.

이번 회담 결렬은 심상치 않다. 하노이에서 북·미 양국의 입장이 확인된 이후 만남이고 7개월 만에 간신히 성사된 것이며 북한이 시한으로 못 박은 기간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북한이 일방적 입장을 거두지 않으면 2017년 상황이 재현될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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