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호주의 한국선교 130주년 의미

한국 첫 호주 선교사 헨리 데이비스 한 알의 밀알 돼 한국서 영원히 빛나

호주선교사 후손들이 6일 경남 창원 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 뒤편에 있는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 묘비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헨리 데이비스(1856~1890) 목사와 그의 누이 메리 데이비스(1853~1941) 선교사가 호주장로교회의 파송으로 부산항에 도착한 것은 1889년 10월 2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발을 내디딘 최초의 호주 선교사였습니다.

호주 멜버른대학과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에서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헨리 목사는 멜버른대학에서 교수요원으로 청빙을 받을 만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요청을 뒤로하고 호주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메리 선교사와 함께 부산항에 입항합니다.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로 갔고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과 교제하며 한국어를 배웁니다.

약 5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운 그는 메리 선교사와 부산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먼저 도보로 길을 나섭니다. 부산까지 걸어가면 길에서 만난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90년 3월 14일 시작한 전도의 길은 서울 경기도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까지 이어집니다.

헨리 목사는 부산으로 가는 동안 만난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게 약 20일간의 전도여행 후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할 때쯤 무리한 도보여행으로 쌓인 피로에 천연두와 폐렴 등이 겹쳐 몸이 많이 쇠약해집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부산 도착을 5일 정도 앞둔 시점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헨리 목사는 4월 4일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에서 사역하던 캐나다 출신의 게일 선교사 등이 간호했지만 그의 몸은 회복될 수 있는 단계를 지나버렸습니다. 이튿날인 5일, 한국에 온 최초의 호주 선교사인 헨리 목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의 나이 34세, 한국에 온 지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 짧은 183일이 그의 한국선교의 전부였습니다.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메리 선교사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폐렴에 걸려 고생하다 그해 7월 18일 멜버른으로 돌아갑니다. 남매의 선교는 거기서 끝이 난 줄 알았습니다. 모두가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헨리 목사가 숨지고 한 달 뒤인 5월 6일, 호주 멜버른의 스콧교회에서 장례를 겸한 추모예배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예배에 참석한 수많은 호주인의 마음에 헨리 목사의 사역이 헛되지 않음을 보이셨습니다. 그의 순교 소식을 들은 호주인의 마음속에 헨리 목사의 사명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날 이후 수많은 호주인이 한국선교를 자원합니다. 존 맥케이 목사 부부, 앤드류 아담슨 목사 부부, 커렐 의사 등이 호주교회와 선교회 등에서 파송됩니다. 헨리 목사의 순교는 호주의 한국선교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킵니다. ‘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PWMU, Presbyterian Women's Missionary Union)도 조직하게 했습니다. PWMU는 40명 이상의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합니다. 헨리 목사 이후 한국으로 파송된 호주 선교사는 130여명에 이릅니다. 100배의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호주 선교사 대부분이 부산이나 경남지방을 선교지로 원한 것입니다. 그들의 심령 안에 부산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헨리 목사의 마음이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하던 사역의 뒤를 잇겠다는 따뜻한 동역의 마음이 그들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올해는 호주장로교회의 한국선교가 시작된 지 1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헨리 목사와 메리 선교사 남매가 부산항에 도착한 날짜는 10월 2일입니다. 감사하게도 경남성시화운동본부에선 호주선교사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초청해 기념예배를 드렸습니다.

초량마을(부산 영주동) 뒷산에 있었다던 헨리 목사의 무덤은 전쟁과 재개발 등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부산진교회에 그의 추모비가 서 있지만 그렇게 그의 묘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지금도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한국선교에 한 알의 밀알이 된 그의 이름은 한국과 호주 그리고 저 하늘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습니다.

<김영우 하남 혜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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