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연합뉴스

미국 정치권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 개시라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 들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문제 삼아 탄핵 카드를 꺼내들었다.

왜 민주당은 이 시점에서 탄핵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여기엔 몇 가지 의문이 붙는다. 민주당 자력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려면 하원 전체 의석의 과반 찬성에 이어 상원 전체 의석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미국 하원의 전체 의석 수는 435석인데 민주당은 235석을 차지하고 있어 탄핵안의 하원 통과는 가능하다. 문제는 상원이다. 상원 전체 의석은 100석인데, 공화당이 53석이고 민주당은 47석이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최소 상원의원 67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최소 20명 이상의 공화당 반란표가 필요하다. 숫자만 보면 민주당의 탄핵 추진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무려 17선(미국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의 ‘노정객’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동안 탄핵을 덫으로 생각해 당내의 탄핵 주장을 억눌러왔다. 가장 큰 걱정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었다. 상원의원 숫자가 모자란데다 탄핵안이 부결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잔인한 역공이 불보듯 뻔했다. 자칫 2020년 대선에서 백악관을 또다시 헌납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탄핵이 블랙홀 역할을 하면 건강보험이나 총기규제 등 트럼프의 각종 실정까지 묻혀버릴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요소들을 알면서도 민주당은 탄핵이라는 칼을 끄집어냈다. 탄핵 반대파였던 펠로시 하원의장의 입장 선회가 결정적이었다. 민주당은 왜 탄핵을 선택했을까. 펠로시 의장은 왜 찬성으로 돌아섰을까.

미국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성격, 트럼프 대통령 위법행위의 심각성, 그동안의 의회 조사 활동 방해, 민주당 내의 탄핵 찬성 여론 폭발의 4가지를 그 이유로 꼽았다. 언론들은 민주당과 펠로시 의장이 탄핵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탄핵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휘말려갔다고 봤다. 워싱턴포스트(WP)는 펠로시 의장이 당내의 탄핵 주장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①‘우크라이나 스캔들’ 이해하기 쉽다

민주당은 이전에도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러시아 스캔들’ 때문이었다. 2016년 미 대선에서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가 당선을 위해 러시아 정부와 공모했다는 의혹이다.

12년 동안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냈던 베테랑 로버트 뮬러가 특별검사로 임명돼 22개월간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사건이 복잡했고 트럼프 진영의 반대 작업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다르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뒷조사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기 위해 군사지원을 보류했다가 집행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처럼 스캔들이 단순 명료하다는 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펠로시 의장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국민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사건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미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공화당도 민심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계산이다.

② 트럼프의 위법행위, 다른 답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권남용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판단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외국의 정상에 정적의 뒷조사를 부탁했다는 것만으로 충격적인 사건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법행위다.

펠로시 의장은 탄핵 개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침해했고 미국 헌법을 위반했다”면서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해선 안 된다”고 했다.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악한 행동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탄핵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이런 위험한 제안을 했을까.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숱한 정치적 위기들을 잘 넘기면서 더욱 대담해졌다”고 진단했다.

③ 탄핵 만이 의회조사 방해의 대안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에 트럼프 진영이 협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 탄핵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세 번째 이유다.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뮬러 특검의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가 트럼프 진영의 방해 공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측근들을 압박해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백악관은 또 하원의 각종 조사 요구를 묵살했다. 백악관은 하원의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하원의 모든 소환장에 맞서 싸우고 있다”며 소환 불응에 앞장섰다.

민주당은 탄핵이 아니면 트럼프 진영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조사도 방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탄핵 절차에 따른 조사를 해야 의회 활동 방해가 줄어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조사 방해 전략은 그동안 효과를 거뒀지만 그 전략이 탄핵 조사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④ 민주당 내 목소리가 지도부 견인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져 나오면서 민주당 지도부들도 당황했다. 지도부는 대응수위를 놓고 고민했고 탄핵 추진을 머뭇거렸다.

민주당 소장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진 직후 “대통령의 위법 행위보다 민주당 리더들의 탄핵 거부가 더 큰 국가적 스캔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내 보수파인 커트 슈라이더 하원의원까지 “당에 사로잡히지 말자”고 했다. 지도부가 탄핵 반대를 고수하면 항명하자고 한 것이다.

지난달 24일 펠로시 의장이 탄핵 개시를 발표하기 전에 민주당 하원의원의 93%(218명)는 이미 탄핵을 주장했다. 만약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 개시를 미뤘다면 민주당은 집안싸움에 휘말렸거나 펠로시 의장이 불신임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펠로시 의장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셈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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