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대 은평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윤종서(오른쪽 두번째) 교수가 지난 4일 소아 전용 응급실을 찾은 어린이를 진찰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A군(9)은 추석 연휴인 지난달 15일 저녁, 송편을 먹던 중 갑자기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었다. 떡이 목에 걸린 걸로 생각한 부모는 급히 119에 신고했고 구급대 도착 5분 만에 인근 가톨릭의대 은평성모병원 소아 응급실로 실려갔다. 당시 응급실에 상주하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김경훈 교수 등은 아이의 의식과 스스로 호흡이 없다는 것을 곧바로 확인했다. 비디오 후두경(내시경 일종)을 이용해 목 내부를 들여다봤으나 이물질은 확인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뇌출혈일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뇌CT 및 MRI 촬영, 뇌척수액 검사 등을 추가로 시행했고 30여분 만에 아이 증상이 이물질에 의한 기도폐쇄가 아닌 급성뇌염에 의한 것임을 밝혀냈다. 촌각을 다투는 긴급 상황에서 전문의의 즉각적인 진료와 응급처치가 빛을 발했던 것이다. A군은 이후 소아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 모니터링을 받았고 이틀 후 완전 회복돼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당시 A군의 응급 처치를 맡았던 김경훈 교수는 7일 “5분만 늦었더라도 목숨을 잃었거나 심각한 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긴급했던 순간을 설명했다.

만일 A군이 소아 전용 응급실이 아닌 일반 응급실로 이송됐다면 어떠했을까. 성인, 소아 환자 구분 없이 붐비는 응급실 한 켠에서 한참을 대기하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소아의 경우 비교적 응급도가 높은 성인 환자에 대기 순번이 밀렸을 가능성이 높다. 또 접수 후에는 대개 간호사와 수련의(인턴, 레지던트)의 문진과 검사가 먼저 진행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진료를 받기까지 길게는 수 시간이 더 걸렸을 수 있다.

국가응급의료환자진료망(NEDIS)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응급실을 찾은 환자 가운데 0~ 9세가 17.8%를 차지했다. 소아가 응급실을 찾는 대표 질환은 발열, 구토 및 설사, 복통, 경련, 호흡곤란 등이다. 은평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윤종서 교수는 “보통 소아 는 바이러스 감염 등에 의한 발열, 폐렴, 급성장염으로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90% 이상이다. 음식물이나 장난감 삼킴에 의한 기도폐쇄, 화상 등 사고 위험에도 늘 노출돼 있다”고 전했다.

성인 응급 환자와 마찬가지로 소아 응급 환자에게도 시간이 생명이다. 앞서 A군을 응급처치했던 김경훈 교수는 “이물질에 의해 기도가 막힐 경우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기도폐쇄로 이어지고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A군은 검사 결과 기도폐쇄가 아닌 급성뇌염으로 판명났지만 둘 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점은 같다”고 말했다.

은평성모병원은 지난 4월 개원하면서 일반 응급실과 별도로 소아응급실을 마련했다. 모두 8개 병상을 갖춘 소아 응급실은 만 18세 미만의 내과 응급 질환자를 받는다. 소아 응급실은 서울 및 경기 서북권 지역에서 유일하게 교수급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365일 24시간 상주하며 응급환자를 받고 있다.

윤 교수는 “이곳엔 레지던트가 없다. 환자가 오면 곧바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보며 응급상황에 대처한다. 환자 평균 대기 시간은 10분 이내”라고 했다. 신속한 진료를 통해 소아 환자의 골든타임을 사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9명의 전문의 가운데 7명이 교대로 시간 공백없이 응급실을 지키고 있다. 대신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 사람 당 외래 진료를 주 5회에서 주 2회로 줄였다. 가벼운 질환 보다는 중증·응급 환자 치료에 중점을 두는 상급종합병원으로서 기능에 충실하겠다는 게 병원 방침이다.

윤 교수는 “소아가 일반 응급실을 방문하면 보통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아닌 의료진에게 1차 진료를 받는다. 이 때문에 응급환자들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A군은 다행히 소아 응급실로 이송돼 일반 응급실보다 대기 시간이 짧았고 30분 안에 모든 검사와 치료가 진행돼 빠르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은평성모병원은 소아응급실과 함께 소아중환자실(5병상), 신생아중환자실(25병상)도 갖췄다. 중증 소아환자 대부분은 24시간 모니터링 및 실시간 처치가 필요하다. 이른둥이(미숙아)의 경우 합병증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 이 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소영 교수는 “이른둥이의 경우 호흡기, 신경, 위장 등 각종 신체 장기가 성숙하지 못한 상태라 뇌, 폐 등에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면서 “심장질환을 앓는 이른둥이가 있다면 소아 심장 전문의 뿐 아니라 소아 흉부외과, 소아 안과, 소아 재활의학과, 소아 영상의학과 등 다양한 진료과 전문의들이 협진해 아이 상태를 다각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37주 미만 이른둥이 구성비율은 7.8%로 추정되며 2008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른둥이가 늘수록 중증 소아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과 시설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제 윤 교수팀이 중환자실 치료 경험이 있는 18세 미만 42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소아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성인 중환자실에서 함께 치료받은 환자들에 비해 사망률이 2.78배 낮게 나왔다. 윤 교수는 “흔히 소아는 성인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지만 성인과 소아는 신체적으로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소아에 특화된 진료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의료기관 가운데 소아 응급실과 소아 중환자실을 갖춘 곳은 드물다. 2015년 기준 소아 중환자실 병상은 소아 인구 7700명당 1명 수준으로 매우 적다. 또 상급종합병원 32곳 가운데 절반에도 훨씬 못미치는 12곳에만 소아중환자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상반기 NEDIS 보고서에 의하면 이런 영향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1~9세 43만명 가운데 절반 가량(21만명)이 전문의 진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은평성모병원은 개원과 함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하는 소아 응급실, 소아중환자실, 신생아중환자실을 두루 갖추고 소아에 특화된 전문 진료에 나서 의료계 관심을 끌고 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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