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프지만 지금 한국에서 경쟁을 버텨내는 데 필요한 건
능력 길러주고 기회 보장해줄 운(luck)일지 모른다
능력 있는 부모를 가진 사회적 행운의 결과물을
일부 계층이 독점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그거야말로 최후의 적폐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정의로운 구성원 배출과 정의로운 제도 구축이 필수다. 어느 한쪽이라도 없으면 안 된다. 플라톤은 정의의 문제를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조화로운 역할 분담 문제’로 보았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식은 정의의 문제를 공적 영역에 치우치게 만들어 제도와 질서의 완전성이라는 이상을 좇아가게 만드는 한편,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개인 상호간의 불의의 문제는 등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예컨대 어느 사회든 사회의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감 등을 이유로 부당한 취급을 받는 개인들이 존재하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의의 문제를 ‘호혜성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 상호간에 정당하게 대우하는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이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황금률과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 내가 받기를 원하지 않는 대접이라면 남도 그렇게 대접하지 말라)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에 잘 드러나 있다.

구성원 상호간의 정당한 대접은 정당한 몫의 분배에서 시작된다. 몫의 분배 방식과 관련해서는 크게 배급체제와 경쟁체제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재 지구촌 대다수 국가들은 경쟁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경쟁체제가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전제조건은 공정성인데, 우리 사회가 공정한지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소득과 부, 권리와 의무,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개인의 자아실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업은 몫을 분배함에 있어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의사가 된 청년과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사원이 된 청년 사이에 분배되는 몫의 차이가 어떨지에 관해서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많으나 경쟁에서 져서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긴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 원하는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고,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 예컨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대나 의전원에 진학하기 위한 스펙을 보유해야 한다. 이것이 경쟁에서의 능력 문제다. 하지만 능력에 큰 차이가 없더라도 입학 정원 문제로 부득이 경쟁에서 지는 경우가 있다. 아주 사소하게 취급되는 스펙으로 말미암은 미세한 점수 차이로 패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것은 경쟁 절차가 공정했다는 데에 있고, 만약 경쟁 절차가 불공정했다고 하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양극화로 인한 빈부 격차가 심화돼가는 사회에서 이 구호는 허구에 불과하다.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위기 청소년들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의사나 법조인이 될 기회가 보장돼 있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러한 말들 이면에는 그들이 능력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능력을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의 능력 부족과 게으름이 그런 결과를 초래했을까? 감히 말하건대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할 정도의 능력과 불성실함이 위기 청소년들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가정의 해체를 경험한 아이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보육원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타고난 능력조차 계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이른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아이들은 태아 때부터 최선의 양육을 받고 자라고, 상급학교 진학 과정뿐만 아니라 직업 선택에 있어서도 거인들끼리 만들어둔 네트워크 속에서 재빠르게 기회를 포착한다.

서글프지만 결국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능력을 배양해 주고 기회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운(luck)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회 현상에 관해서는 엄중한 비판이 제기된다. 세기의 정의론자인 존 롤스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특별한 재능과 근면함이나 성실성 등과 같은 좋은 성품은 ‘자연적 운’이라고 하고, 능력 있는 부모와 좋은 가문 등은 ‘사회적 운’이라고 한 다음, 그러한 운들을 바탕으로 획득된 결과물들을 개인이 독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했다. 로널드 드워킨도 운을 타고난 개인의 능력을 의미하는 ‘냉엄한 운(brutal luck)’과 개인의 선택과 노력의 결과인 ‘선택적 운(option luck)’으로 나눈 다음, 냉엄한 운에 따른 결과물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평등 이념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운이 지배하는 사회, 운으로 인한 결과를 조정하기보다 고착시키는 사회에서 정의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타고난 운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운으로 인한 결과를 더욱 고착시키고 청년들의 선의의 경쟁을 침해하는 불공정한 개입은 중단돼야 한다. 이는 정의로운 사회를 가로막는 ‘최후의 적폐’임을 기억해야 한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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