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다. 2019년 7월, 일본은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언급했고, 8월에는 배제 결정을 내렸다. 일본은 특히 IT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를 수출 규제 대상으로 적시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자랑하는 4차 산업혁명의 꽃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산업에 칼끝을 겨눔으로써 우리를 겁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경제외적인 문제를 수출 규제로 보복하는 행위의 부당성을 따지는 것은 논외로 치자. 중요한 것은 당장 글로벌 공급 사슬에 문제가 생기면서 우리 기업들의 미래 존립이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삼성전자다. SK하이닉스나 LG전자도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된 것은 틀림없지만 삼성전자가 타깃이라는 점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사실 지난 40여년간, 좀 더 정확히는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이후로 세계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글로벌 시장 통합과 분업 구조(공급 사슬) 정착을 통해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들어 왔다. 글로벌 공급 사슬에서 부품 생산을 담당해온 한국은 일본이 담당한 핵심 소재에 의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까지 ‘노동의 분업’ ‘상호 의존성’ 운운하며 소재, 부품, 생산설비 국산화에 소홀했던 업보라고나 할까. 비단 IT 관련 산업뿐 아니라 거의 전 산업에 걸쳐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가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이럴 때면 더욱더 애절하게 생각나는 분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이다. 정 회장이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라 할 수 있는 사장단회의를 주관할 때면 반드시 챙기는 3가지 통계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회사별 ‘소재, 부품, 생산장비의 국산화 목표 달성률’이다. 정 회장은 조선, 자동차, 건설장비 등 우리나라의 중후장대 산업을 해외 합작 없이 100% 자력으로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러다 보니 소재, 부품, 생산장비 국산화만이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몸소 체득했고, 정 회장이 사장단회의를 통해 국산화 계획과 추진 상황을 직접 챙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 회장은 소부장 국산화율을 높일 수만 있다면 어떤 인센티브와 페널티도 가리지 않았다.

작년 8월 초에 삼성전자는 향후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해 4만개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계획을 보고 자문자답을 해봤다. 일자리위원회에 관여돼 있는 나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다. 삼성전자가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해 4만개의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좋은 일자리 1개에 무려 45억원이 든다는 것인데.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메모리 칩 등 각종 제품의 자본장비율이 어마어마하구나.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투자에 수반하는 소재, 부품 그리고 생산장비 국산화율은 얼마나 될까. 국산화율이 높지 않다면 삼성전자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애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좋은 일자리를 찾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겠구나 싶었다.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와 기업이 함께 떨쳐나서 소부장 국산화에 온 마음과 뜻 그리고 힘을 다해야 한다. 그리하여 소재 강국이라고 힘을 뽐내며 몽니를 부리는 일본도 극복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투자는 우리가 하는데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돌아가서는 헛일 아닌가. 고 정주영 회장이 했던 것처럼 법과 제도 그리고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모든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동원하고, 소부장 국산화를 더욱 확실하게 챙겨야 한다.

일본의 경제침략을 당해 온 국민이 치욕에 떨고 있다. 또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작금의 위기를 당하여 이를 극복할 방안은 아직 묘연하다. 과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일찍이 ‘소재, 부품, 생산장비’ 국산화를 경영의 도로 가르친 사람이 고 정주영 회장이다. 그분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고 정주영 회장이 새삼 그립다.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 설립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