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관계가 실무협상 결렬 등으로 요동치고 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한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정부는 다음 달 25~27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이 참석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세안(ASEAN)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을 말한다. 올해는 한·아세안 관계 수립 30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라 의미가 크다. 북한에 아세안은 각별하다. 이들 국가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북한 입장에서 아세안은 비적대적인 국가로 인식된다. 1,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열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진단한다. 북한이 비핵화로 가는 단계까지 미국과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세안은 한·미 평화 구축 노력과 북·미 회담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드는 세력이다. 북한에 우호적인 충고를 할 나라도 아세안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들어서고 개혁·개방을 한다면 역할은 훨씬 커진다. 당장 미국 기업이 북한에 진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고, 동남아 기업이 북한에 투자하는 게 현실적 대안이다. 북한이 외국과 교류를 시작하면 법 제도가 필요한데 이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이 가본 길이다. 북한이 정상국가화를 위해 다양한 동아시아 지역다자협의체에 발을 내디뎌야 할 때 북한을 초청하고 가입 승인을 결정할 국가도 아세안이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김 위원장 참석 여부를 떠나서도 정부 차원에서 큰 관심을 갖고 있는 행사다. 역대 정부는 오래전부터 아세안에 공을 들여 왔다. 특히 문재인정부는 취임 직후 ‘신남방(아세안+인도) 정책’을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 내 아세안 10개국 모두를 순방하겠다는 공약을 지켰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외교적인 측면뿐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아세안은 중요하다.

수출도 수입도 투자도 관광도 그 밖의 다른 교류도 특정 국가 편중은 위험하다.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중국의 사드 보복과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새삼 알게 됐다. 최근 신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미·중 무역 분쟁이 계속되면서 우리의 수출 환경이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패러다임을 바꿔야하는데 그 해답이 아세안과 인도에 있다.

정부와 기업의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한·아세안 상호 교역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1600억 달러로 치솟았다. 이는 우리 전체 교역에서 중국 다음가는 규모다. 아세안 시장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미·중·일에 편중된 위험을 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은 그동안 글로벌 생산기지로 주로 인식됐지만 실은 신흥 소비시장으로 잠재성이 높다. 세계적으로 연간 1~2%대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아세안은 5%, 인도는 7%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잠재적 소비층인 인구는 인도(13억6874만명)와 아세안(6억6103만명)을 합치면 20억명을 넘어선다. 특히 평균 연령이 30세일 정도로 젊고 역동적이다. 게다가 이들 지역은 K팝 등의 인기로 한국에 대한 인식도 좋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우리 사회의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낮다.

일례로 현재 대학에는 중국 관련 학과가 240여개, 일본이 180여개 있지만 동남아 관련 학과는 10개에 불과하다. 국립대에는 아예 없다. 그만큼 전문가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아세안과 인도로의 기업 진출을 막고 있는 장벽과 규제도 여전히 높다. 신남방 주요국과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정보기술 전기, 수소차 같은 미래 산업을 함께 개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 콘텐츠와 맞춤형 관광 상품도 발굴하면 좋을 것이다. 아세안과의 협력은 신성장 동력이 필요한 우리 경제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실한 과제가 됐다. 11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높은 국민적 관심 속에 치러져 아세안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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