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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박종순 (11) “우리 교회 돌봐주세요”… 목회 배우러 남현교회로

장로님들과 마찰 생긴 담임 목사님, 주일 설교만 하시고 산기도처 기거

박종순 목사가 2005년 고 방지일 목사와 고 김의환 전 총신대 총장(왼쪽부터)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영락교회에 있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숭실대 교수 한 분이 교회로 찾아오셨다.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남현교회 교인이었다. 이 교회에는 숭실대 교직원들이 여럿 출석했다.

교수님은 다짜고짜 교회 상황을 설명하셨다. “박 목사님, 들어보세요. 최근 교회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수습하시다가 힘에 부치셨는지 주중에는 관악산의 기도처에 머무십니다. 교회를 돌볼 분이 안 계십니다.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를 돌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간청이었다. 사실 영락교회에선 교육부에 속해 있어 목회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어차피 경험해야 할 것, 아는 분들이 계신 곳에서 배우기로 하고 남현교회 행을 결정했다.

교회 사정은 듣던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갈등이 심했다. 담임목사님은 정말 주일 설교만 하시고는 산에 오르셨다. “박 목사가 당분간 교회를 다 돌봐 주세요.” 이런 부탁만 남기셨다.

담임목사님이 안 계시니 주중 설교와 장례식 결혼식 심방 새벽기도 등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다. 덕분에 훈련은 제대로 받았다.

늘 피곤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교인 가족이 세상을 떠나 장례예배를 집례하러 장례식장에 갔을 때였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앉아있는데 갑자기 향 연기가 코를 찔렀다. 바로 기절해 버렸다. 누적된 피로에 독한 연기를 마시니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병원에 실려 가 주사 맞고 정신을 차린 뒤 교회로 돌아왔다.

어느 날부터 담임목사님은 주일에도 교회에 오시지 않으셨다. 난감했다. 하지만 부목사란 담임목사를 도와 교회를 돌보는 사람 아닌가. 주일 설교를 마치면 언제나 담임목사님이 계시는 관악산 기도처로 올라갔다. 담임목사님을 만나서는 교회 돌아가는 상황을 소상히 보고했다. 상당 기간 교회와 산을 오갔던 것 같다. 보고하면 담임목사님은 내가 할 일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담임목사님 말씀을 그대로 교회에 전했다.

이때 부목사의 덕목을 체험했다. 부목사의 도리는 담임목사님의 목회를 잘 돕는 데 있다. 이게 싫으면 부목사를 하면 안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목회는 담임목사가 되면 할 수 있다.

관악산 기도처와 교회를 오가는 원격 목회도 결국 끝났다. 장로님들과 끝내 화해하지 못한 담임목사님이 사의를 표하신 것이었다. 결국, 교회의 선장이 사라지고 말았다. 담임목사님이 그만두기 얼마 전부터 교회 건축도 시작됐다. 그 일도 내 일이 됐다. 교회 건축이 얼마나 힘든가. 평안해도 쉽지 않은데 이 교회는 갈등이 컸다.

다툼이 생기면 낮이고 밤이고 달려가 중재했다. 우여곡절 끝에 건축도 마무리돼 갔다. 그때 장로님들 중 일부가 나를 담임목사로 모시자는 의견을 냈다. 곧바로 반대하는 분들이 생겨났다.

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게 아닌가. 고작 30대 초반이었다. 담임목사 하겠다고 욕심부릴 나이가 아니었다. 마침 목포에서 목회하던 목사님을 모셔오자는 의견이 나왔다. 내가 먼저 장로님들께 말씀드렸다. “장로님, 그분을 담임목사님으로 모시는 게 좋겠습니다. 모시러 가시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렇게 새 담임목사님을 모셨다. 나는 교회에 양해를 구하고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에 진학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담임목사 하겠다고 우기지 않았던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른다.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지혜를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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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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