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초기 단편 소설인 ‘가면의 꿈’에는 가발과 콧수염으로 변장을 하고 밤 외출을 하는 한 판사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은 그가 그런 차림으로 밖에 나가 어떤 일을 하는지, 혹은 겪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 돌아온다는 것 말고 다른 언급이 없다. 그러니까 작가가 이런 인물을 내세워 하려는 이야기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류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이중생활에 대한 고발도 물론 아니다.

이 소설은 그가 극심한 피곤기를 지닌 채 퇴근한 후 2층 서재에 올라가 변장을 하고 밖으로 나가는데, 외출해서 돌아올 때는 이상스럽게 활기를 띤다고 말함으로써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대인이 감당해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뇌의 강도를 우화적으로 표현한다.

가면을 쓰는 것은 자기 얼굴을 가리는 행위이다. 자기 얼굴을 가리는 이유가 여럿 있을 수 있지만, 이청준의 소설 속 인물에 대해 말하자면 그 이유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인 것 같다. 퇴근할 때 그의 얼굴에 묻어 있는 극심한 피곤기는 그가 업무 혹은 직책상 하고 있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에 대한 내적 갈등과 자기 검열의 표상으로 읽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970년대의 시대 상황과 그의 직업 등을 고려하면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역할과 개인의 가치관 사이의 충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모종의 부끄러움과 자괴감으로 몹시 괴로웠을 것이다.

이 인물만이 아니라 이청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개 어떤 일에 대해 매우 섬세하고 민감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데, 부끄러움과 부채감이 대표적인 감정이다. 인물들은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떳떳한지 몰라 괴로워하고, 과거에 했던,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더라도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일 때문에 힘들어한다. 가령 그의 다른 소설 ‘병신과 머저리’에서 ‘형’은 전쟁 중에 있었던 한 사건을 불러내서 현재의 자신을 괴롭히고, ‘눈길’의 화자인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부채감을 ‘나는 빚이 없다’는 말을 거듭 되뇌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끊임없이 드러낸다.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관용적 표현은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사람의 말이다. 가면을 써서 자기 얼굴을 숨기려고 하는 이청준의 소설 속 인물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 그러니까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정말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짓을 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짓을 했으면서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느끼지 않은 사람은 얼굴을 들고 다닌다.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부채의식이 아예 없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지만(윤동주, 서시), 어떤 사람은 태풍이 불어도 끄떡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가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가면의 꿈’의 주인공은 차츰 가면을 쓰지 않고도 견디게 되고, 퇴근 후 밤 외출도 뜨문뜨문하게 된다. 그럴수록 그의 맨얼굴은 점점 더 당당하고 뻔뻔스러워져 갔다고 소설은 전한다. 맨얼굴이 당당하고 뻔뻔한 가면과 같아져서 더 이상 가면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상황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픔을 느끼던 감각이 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견딜 수 없던 일이 웬만큼 견딜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이 두꺼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이 가면처럼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이 가면이 되면 굳이 얼굴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쓸 이유가 없어진다. 가면인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이유가 없어진다. 가면인 얼굴을 들고 다니는 이들은 부끄러워할 얼굴이 없기 때문에 어떤 부끄러운 짓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게 된다. 자기, 혹은 자기편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궤변을 늘어놓거나 맨얼굴을 가지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된다.

당당하지 않은 일을 하고도 너무 당당한 사람들, 절대로 남의 눈치를 보거나 숨지 않는 사람들, 부끄러운 말을 부끄러움 없이 하는 사람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자기 얼굴을 감추려 하지 않는 사람들, 뻔뻔한 사람들, 가면조차 쓰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무섭다.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무섭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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