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대통령 하야 요구는 과도한 반정부 정치 구호
서초동의 ‘조국=검찰 개혁’은 조국 구하기 도그마로 비춰져
충돌하는 두 광장에서 정치를 비워 민주 상징성 회복시켜야


광화문광장이나 서울광장이 온전히 비어 있었던 적은 별로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이나 해고노동자들의 텐트, 보수단체의 농성장 등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정치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치적 구호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저 시민의 목소리 중 하나다. 광화문과 서초동 일대에 대규모 집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광장 정치’란 용어가 등장했다. 각자 자발적 집회임을 주장하지만, 여권과 제1야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광장에 불러 모은 군중의 규모를 두고 200만이니, 300만이니 경쟁하고 세 과시를 통해 각각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려 하니 광장의 정치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광장을 정치화한 시발은 조국 사태였다. 서초동에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리자 닷새 뒤 광화문에서 이에 맞선 집회가 개최됐다. 반대 성격이라지만 광화문 군중도 서초동 촛불이 주장하는 검찰 개혁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서초동에 모인 시민들은 검찰 수사로 압박을 받다 전직 대통령이 투신한 사건을 트라우마로 지니고 있다. 광화문의 군중도 적폐 수사로 전직 대통령 2명이 감옥에 가고 수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대한 울분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두 광장이 서로를 ‘관제’라거나 ‘동원’이라고 깎아내리는 이유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거취에 대한 입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광화문에서는 법무장관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인책을 내걸고 있으니 반정부 정치집회 성격이 분명하다. 서초동이 조국과 검찰 개혁을 동일시하는 속내도 정치공학적 산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조국 사태에서 밀리면 레임덕이 초래되고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셈법이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해외 파병 같은 이슈에서 양보했다가 결국 정권을 내줬다는 학습 효과도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자기중심적 논리에 불과하다. 폐족으로까지 몰렸던 친노 세력은 문 대통령의 당선을 통해 부활했다. 그게 민주주의요, 선거제도다. 자신들이 집권하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시각은 독재로 치달았던 정권의 핵심 논리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조국을 검찰 개혁과 동일시하는 것은 하나의 도그마다. 서초동 밖에서는 검찰 개혁이 조 장관 수호를 위해 동원된 이데올로기고 그 전략적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라 비춰진다. 그렇지 않다면 일개인의 장관직을 위해 이처럼 많은 이들이 모이고, 조 장관 때문에 희화화 되고 있는 검찰 개혁을 주창하는 현상을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국 도그마’는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대부분의 여론이 반대하는데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후 사학 재단, 가족 펀드 의혹에 이어 자녀들의 입시 편법 의혹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고집을 굽히지 않으면서 위기의 골이 깊어져 이제는 무조건 마이웨이 하지 않고는 수습이 힘들 정도로 미궁에 빠져들었다.

조국 도그마는 이미 숱한 진기록들을 남겼다. 도덕성에 상당한 흠집이 있더라도 장관이 될 수 있다는 신화가 새로 씌어졌다. 가족들이 공정과 정의에 배치되는 잘못을 했더라도 당사자의 불법만 없다면 고위 공직을 맡을 수 있다는 선례가 생겼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요식 절차가 됐다. 청문보고서 기한 내에 수사기관이 기소하거나 영장을 받아내지 못하는 한 후보자를 그대로 임명할 수 있게 됐다. 굳이 국회를 거칠 필요 없이 국민청문회로 갈음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과거 친인척 비위 의혹 때문에 도중하차 한 경우가 수도 없이 많은데, 검찰 개혁이란 대의를 위해서라면 수사대상자의 가족이라도 얼마든지 법무장관이 되는 신기원이 이뤄졌다.

이제는 광장 정치가 새로운 현상으로 등장했다. 하나의 광장이 다른 광장을 부르고 두 광장이 충돌하고 있다. 이 와중에 대의 민주주의의 설 자리가 없어졌다. 통합의 정치 기능이 실종되고 광장 대 광장의 세 대결만 남아 국민을 둘로 쪼개고 있다. 대통령 하야 같은 과도한 주장이든 혹은 도그마든 군중만 모으면 된다는 논리가 횡행한다. 정치가 개입하면서 광장은 민주주의의 원천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무덤으로 바뀌고 있다.

광장에서 정치를 비워 시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정상적 언어를 끊어버린 뭇 구호와 원색적 깃발을 내리고 합리와 상식, 정의가 다시 광장에 흐르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 광장은 무한할 수 없다. 진정성을 통해 공감을 얻지 못하면 외면당하고 결국 광장은 다시 비게 된다. 벌써 광장에서 눈을 돌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년 발표)을 떠올리게 한다. 공산주의자를 아버지로 둬 경찰 조사를 받는 주인공이 월북하지만 그곳 역시 진정한 광장은 없고 생경하고 공허한 구호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두 체제 사이 방황하던 그는 제3국을 택하고 결국 배 위에서 투신한다. 빛 바랜 광장을 대하는 민심의 절망을 꿰뚫어본 혜안이 새삼스럽다.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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