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3개월째 걸핏하면 ‘죽자’는 말을 꺼냈다. 그때마다 ‘안 된다’ ‘살아보자’며 만류했다. 그러나 절망감과 우울감은 야금야금 A씨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스스로 단정하는 순간 비극적 결정에 동참하게 된 자신을 발견했다. 영하 8도까지 떨어진 겨울날 부부는 아이를 태우고 두 시간을 달려 한 달 전 여행 차 왔던 펜션을 다시 찾았다. 아이를 재우고 번개탄을 피웠는데, 하루 뒤 그녀만 혼자 눈을 떴다.

그들은 빚 때문이었다고 했다. 남편은 3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과 모아둔 돈 3억3000만원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종잣돈은 2년 만에 모두 사라졌다. 대출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시작했고 돌려막기를 하며 불어난 빚이 1억3000만원이었다. “독촉이 시작됐고, 아이가 앓고 있는 선천적 유전 질환은 호전되지 않았다”는 게 변명이었다. 그러나 4살 아이에게 경제적 파탄의 책임은 없다. 법원은 “반인륜적 행위로 평생을 죄책감과 회한 속에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판시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변사를 추적하는 수사기관 기록에는 주변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간접 정황이 나올 뿐이어서 아이들이 살해를 당해야 하는 정확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국민일보는 피해 아동 죽음의 단초를 찾기 위해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자녀 살해 후 자살 미수 사건 판결문을 입수했다. 이 중 최근 3년간 선고된 판결 30건을 추려 심층 분석했다.

아이는 가정의 몰락에 책임이 없었다. 부모의 극단적 선택 사유(중복 집계)로 개인 문제인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가 확인된 사례는 19건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해하려 한다는 망상 등에 빠져 자녀를 해친 사례도 있었다. 이혼 등의 가정 불화는 14건의 사례에서 나타났다. 가장의 사업실패(10건), 사채 등 채무 증가(13건), 생활고(19건) 등 경제적 궁핍 관련은 광범위하게 확인됐다.


B씨는 병원비 마련 걱정을 털어놓다 전화로 부부싸움을 했다. 돈 걱정을 먼저 하느냐는 핀잔이 미숙아로 태어난 딸의 치료비와 빚, 집 문제 등으로 번지며 감정이 폭발했다. 통화 직후 화해하려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지만 문전박대 당했고, 딸 살해 후 자살을 결심했다. A, B씨 사건처럼 자녀가 질병이 있었던 사례는 4건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두 사건은 자녀의 질병이 살해 후 자살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나머지 두 사례는 이혼 뒤 오랫동안 여성 혼자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다가 생활고에 시달려 우울증이 찾아왔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사건이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살기 힘들다’고 하더라.” 또 다른 살해 후 자살 미수자인 C씨는 동반자살 의향을 고등학생 자녀에게 물었었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그 역시 퇴직 후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다. 아파트를 담보로 2억7000만원, 부친에게서 5000만원을 빌려 투자규모를 키웠는데 실패했다. 수사기관은 경제적 곤궁이 그를 비관하게 만들었고, 가족 살해 후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봤다. 그러나 의향을 물었다는 진술과 달리 그는 살해 도구를 몰래 준비했다. 범행 당일 수면제를 몰래 탔고, 잠든 딸 목을 졸랐다. 그 역시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살아남았다. 1세대 법의학자인 이윤성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대부분 어린 자녀들은 부모가 ‘같이 하늘나라로 가자’고 하면 동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의존할 곳이 부모밖에 없는 어린 자녀들이 어쩔 수 없이 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뒤 범행을 준비한 흔적도 여러 사례에서 확인됐다. 범행 준비 기간이 드러난 20건 중 결심 직후 수 시간 내에 실행을 옮겼던 건 6건이었고, 1~5일을 준비한 사례가 10건에 달했다. 4건은 그보다 오랜 시간 자신과 가족의 죽음을 계획하고 준비했다.

임주언 정현수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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