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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년 목사의 ‘예수 기도’ 레슨]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있는 자리에서 언제나 쉽게 기도 해야

<7> 쉬지 않는 기도의 근간, 단숨기도(2)


오래 전 교계에 제법 이름이 알려진 한 장로님과 교제를 나눈 일이 있다. 이런저런 환담 중 그분은 필자에게 이런 고충을 털어놓으셨다. “목사님은 기도를 어떻게 하세요? 전 평생 주님을 믿었는데 부끄럽게도 기도를 잘하지 못해요. 기도를 하고 싶은데 잘 안돼요.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도 감이 잘 잡히질 않네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것이 어디 그 장로님만의 고민이겠는가.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기도는 하지 않는다. 기도에 관한 서적을 읽고 기도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도 정작 기도는 하지 않는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보단 회피하고 멀리한다. 그러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한 부담과 죄스러움에 시달린다.

할 수 있는 만큼 기도하라

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심적 부담이다. 기도를 해보지도 않고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쁜 생활에 시간이 없다며 미룬다. 믿음이 성숙해지면 언젠가 하겠거니 생각하며 미룬다. 실상은 기도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도 부담감으로 기도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훈련 부재이다. 신앙생활하며 제대로 기도하는 법을 훈련받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많은 크리스천이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오래 엎드려야만 제대로 기도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물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드리는 정시기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있는 자리에서 언제나 쉽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하고 싶을 때, 아니 기도해야 한다는 부담이 들 때, 심지어 죄 가운데 있을 때라도 그 즉시 자기 자리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바로 ‘단숨기도’를 통해서 말이다.

쉬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누구나 이 단숨기도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곧 때마다 시마다 “오 하나님 아버지!(마 6:9)” “오 키리에엘레이손!(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눅 18:38)” “오 파라클레토스!(보혜사 성령이시여! 요 14:16)” “오 예수 그리스도!(마 1:18)” 이 네 마디를 고백하는 것이다. 이 기도는 짧지만 강력하다. 그 자체로 거룩한 하나님의 성호(聖號)인 동시에, 성경과 교회사 속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증거된 고백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기도는 어렵지 않다. 부담스럽지 않다. 일과 중에라도 쉬이 할 수 있다.

기도를 더 미루지 말자. 지금 입을 열어 단숨기도를 시작하자. 여러 말을 길게 하지 말고 그저 한 호흡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먼저 고개를 살짝 들고, 두 손을 살포시 올리며 천천히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라. “오 하나님 아버지!” 그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며 천천히 하나님을 부르라.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분의 성호들을 반복해서 불러보라. 멈추고 싶을 때까지 그렇게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 “할 수 없는 만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기도하라.”(돔 채프만)

무궁한 기도로의 초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영성가이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짐승이나 산천초목과도 소통이 가능했던 깊은 영성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의 제자들이 기도를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았다. 스승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밤새도록 ‘키리에엘레이손’만 반복할 뿐이었다. 긴 침묵 속에 ‘키리에엘레이손’, 또 잠시 뒤에 ‘키리에엘레이손’ 하며 밤을 지새운 것이다. 필자 역시 이런 경험이 있다. 하나님 아버지만 부르다 반나절이 가기도 하고, 위의 네 마디로 기도하며 밤을 새운 적도 있다. 단 몇 마디로도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단숨기도는 우리를 깊이 있는 영성과 무궁한 기도의 세계로 이끄는 신비함이 있다. “오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큰 힘과 위로를 얻고 감사하게 된다. “오 키리에엘레이손”이라고 부르는 순간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누리며 회개하게 된다. “오 파라클레토스”라고 부르는 순간 메마른 심령이 성령 충만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순간 매사에 임마누엘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성령의 역사로 인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신묘막측한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17세기 화가 도메니코 페티의 그림 중에 ‘불떨기를 바라보는 모세’(그림)라는 작품이 있다. 불붙은 나뭇가지 가운데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다. 모세는 어리둥절해 하며 신을 벗는다.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자리임을 그가 몰랐기 때문이다. 혹시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에나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가 언제이든, 그곳이 어디이든 상관없이 있는 자리에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오늘부터 단숨기도를 시작하자. 어디서나 하나님을 부르자. 바로 그 자리로부터 신비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어제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겐 지금 오늘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시작합시다.”(마더 테레사)

김석년 목사
<서울 서초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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