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80년사’에 실린 조선어큰사전 원고. CJ대한통운 제공

한반도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던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운송 창고에서 기쁨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찾았다!”

창고를 뒤지던 사람들이 발견한 건 광복 후 행방이 묘연했던 ‘조선어큰사전’ 원고 뭉치였다.

3년을 거슬러 올라간 1942년 10월 1일, 식민 지배하에서 우리말 연구와 정리, 보급을 위해 사전 편찬 작업을 하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일제에 검거돼 함경도 함흥과 홍원에서 투옥됐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었다.

회원들이 검거되면서 사전의 원고는 경찰에 압수됐고, 함흥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 증거물로 제출됐다. 회원들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네 사람이 항소를 했는데, 경성고등법원으로 사건이 옮겨지면서 관련 서류와 증거물도 같이 서울로 보내졌다.

하지만 증거물 가운데 조선어큰사전의 원고 뭉치가 들어 있던 상자는 경성고등법원에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경성고등법원은 광복 사흘 전인 1945년 8월 12일 상고 기각 판결을 내리게 된다.

광복이 되면서 함흥 감옥을 나선 학자들은 서울에 모여 3년 전 경찰에 압수된 원고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에 나섰다. 그러던 중 경성역 조선운송 창고에서 인부들과 함께 화물을 살펴보던 역장이 상자 속의 원고 뭉치를 발견하고 학회 측에 이를 알렸다.

다시 빛을 보게 된 조선어큰사전 원고는 2년이 지난 1947년 10월 9일 한글날 기념식에 맞춰 첫 번째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후 1957년까지 6권의 ‘우리말큰사전’이 간행됐다.

사전 편찬에 참여한 국어학자 고(故) 김병제씨는 1946년 ‘자유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원고 상자의 뚜껑을 여는 이의 손은 떨리었다. 원고를 드는 이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었다”면서 원고뭉치를 발견하던 상황을 돌이켰다.

그 시절 철도 운송을 위해 거의 대부분 주요 역엔 화물창고가 있었고, 짐들은 철도역 근처 조선운송 창고에 먼저 맡겨졌다. 조선운송은 1968년 한국미곡창고에 흡수합병돼 지금은 CJ대한통운이란 이름으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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