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자녀를 살해한 사건이 10월 첫 주에만 3건 발생했다. 모두 4인 가족이고 생존자는 가해자 1명뿐이다. 미성년 자녀 6명이 희생됐다. 올해 발생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최소 17건, 미성년 자녀 피해자 수는 25명(사망자 23명)으로 늘었다.

시흥경찰서는 7일 자택에서 부부와 자녀 2명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5일 저녁이나 6일 새벽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가정이나 경제 문제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겹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8일 말했다. 가장인 A씨는 “내가 이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8월 퇴사했다.

지난 2일 경남 김해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 가해자(생존)는 생활고 문제로 아내와 다투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지난 1일 제주도 사건 역시 경제 문제 등이 연관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안타까운 사건이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가족의 문제에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하는 식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정부나 수사기관, 법원 등이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살해 후 자살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부모는 살인 사건 피의자가 된다. 경찰은 죽음의 전후를 추적하지만 피의자도 이미 숨을 거둔 상태일 경우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된다.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부검을 진행하지만 아이가 죽어야 할 이유는 규명되지 않는다.


국민일보는 8일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사건의 전후를 추적했던 관할지 경찰관 40여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건마다 사연은 다양했지만 부모인 피의자들은 대체적으로 경제 문제나 가정 문제,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단이 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사연을 쫓다 보면 ‘현실이 이렇게까지 참혹한가’ 하는 참담한 심정을 느낀 적이 있다”는 토로도 있었다. 그러나 경찰들은 모두 “어린 자녀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행위로 동반자살이란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용서받을 수 없는 명백한 살인 범죄”라고 입을 모았다. ‘살인 사건’ ‘가해자의 착각’ ‘뒤늦은 후회’ 등의 단어는 대부분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살인

“아버지가 자녀들과 죽음을 협의하지는 않는다. ‘같이 죽자’고 말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살해당한 것일 뿐이다.”(충청권의 한 수사과장)

“약물을 사용하는 등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소프트 킬링 형태가 많지만 이 역시 살해일 뿐이다.”(전직 범죄분석관)

현장 경찰들은 사건 발생 원인에 대해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는 과정은 대부분 정상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착각에 빠져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사업 실패나 실직, 채무 증가 등 트리거(방아쇠)가 연쇄적으로 당겨지기 시작하면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죽은 뒤 자녀 상황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망상에 빠지는 현상이 목격된다고 한다.

지방청 소속의 한 강력계장은 “살아남은 피의자는 자기가 죽고 난 뒤 자녀들이 살아나갈 여력이 안 보였다고 한다. 살인이 자식들을 암담한 미래에서 구해줄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도 “나 때문에 고생을 하느니 함께 죽자는 마음인 것 같은데 부모가 자식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한다는 건 너무나 독단적인 생각이자 잘못된 선택”이라고 했다. 다른 형사과장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큰 것으로 보이는데, 자녀의 삶을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고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착각

“원래 가난했던 사람들보다 사업체를 운영하다 갑자기 사태가 악화된 사람들이 혼자 끙끙 앓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런 경우 남에게 그런 사정을 알린다는 걸 치부로 생각하고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문제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호남권의 한 경찰관)

“사건을 접하면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가족이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되는 과정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사전 징후가 보이더라.”(영남권의 한 경찰관)

사업 실패로 막대한 채무를 떠안은 뒤 일가족을 죽이고 극단적 선택을 했던 사건을 수사한 한 경찰관은 해당 피의자가 잘못된 책임감을 지녔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변 이웃들은 ‘가장으로, 남편이나 아버지로 손색이 없는 가정적 사람이었다’고 진술했다. 누구도 그 사람이 그런 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문제를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려다 자기만의 사고에 갇히게 되는 장면들이 자주 목격됐다고 한다.

최근 대전에서 발생한 사건 역시 아내는 남편의 경제적 궁핍을 오랫동안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의 한 경찰관은 “가해 부모가 하루아침에 극단적 결심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사소한 갈등이 오랜 기간 누적돼 사건이 촉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후회

“강원도 산골에서 낭떠러지로 차를 몰았다. 아이들만 죽고 부부는 살았다. 자신들도 죽으려고 했는데 죽지 못했다. 나중에 산골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걸 잡았다. 순간을 벗어나니 죽는 게 쉽지 않다고 하더라. 자신이 왜 그랬을까 후회를 많이 했다.”(수도권의 한 강력팀장)

“관계 문제로 감정이 드러난 일반 살인이나 정신병자들이 하는 살인과는 분명히 다르다. 가족을 자기 손으로 죽인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극단적 선택을 실패한 당사자는 죄책감을 상당히 크게 느낀다” “본인도 자해하다 구출된 사례가 있었는데 조사 때 ‘제가 살아도 되느냐’며 울더라.”(충청권의 한 경찰관)

“살아남은 피의자들 중에선 ‘왜 다른 선택지들을 더 고민하고 시도해 보지 않았을까’ 반성하는 일도 많다.”(영남권의 한 경찰관)

극단적 선택에 실패한 가해자들은 극심한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당연하지만 주변인이 받는 충격도 크다. 한 경찰관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은 다른 가족들로부터도 공감을 받을 수 없는 행위다. 친인척 집단 전체가 극심한 트라우마에 빠지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하루아침에 느닷없는 사망 소식을 들은 나머지 가족들의 충격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했다. 한 경찰관은 “유족이 죽은 가해자를 향해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날뛰던 기억이 있다. 관련자들에게 그런 일은 마음의 쓴 뿌리로 남게 되고,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김판 김유나 기자 pa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