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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기독인 하나돼 화해·평화의 주춧돌 됐으면”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3부> 세계에 던진 메시지 (6) 취재를 마무리하며

지난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옛 상해한인교회 자리를 보도한 기사(위쪽 사진)와 100년 전 영국 선교사의 만세운동 폭행 피해 사건 전모를 다룬 기사. 국민일보DB

나름 장정(長征)이었다. 국민일보 종교부는 지난 1월 1일자부터 이달 10일자까지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연중기획을 보도했다. 여름철 감면 기간만 빼고 매주 목요일자 지면을 고정으로 할애했다. 100년 전 신앙의 양심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해 일어선 성도와 교회 이야기를 비롯해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는지를 살폈다. 종교부 취재기자 다수가 참여해 국내와 해외 30여곳을 현장 취재했다.

기획 시작 전부터 기초취재를 담당한 우성규 장창일 양민경 임보혁 기자가 취재를 마무리하는 소회를 이야기했다. 취재기자들은 한국과 일본 사이 과거사 문제가 남아있지만, 양국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동북아 평화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안에서도 과거 식민지배 책임과 사죄 문제를 언급하는 주역이 그리스도인임을 인식하고 양국 교회가 주축이 돼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는 화해와 중재와 치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다.

우성규 기자=국내는 무려 23곳, 해외는 중국 룽징과 상하이, 러시아 연해주와 미국 하와이 등을 방문했습니다. 출장지에서 힘들지 않았나요. 막내 기자부터 말씀하시죠.

임보혁 기자=인천 강화도에선 평신도가 주축이 돼 1919년 3월 18일 전국 최대 규모 만세시위가 있었습니다. 기사에 넣지 못했지만, 당시 시위 리더가 말을 타고 군중을 이끌었다는 진술이 나와서 인상 깊었습니다. 광복 후 진보당 당수가 되는 조봉암도 당시 만세시위로 옥고를 치렀습니다.

장창일 기자=지난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직전에 중국 상하이로 파견돼 100년 전 상해한인교회가 있던 자리를 찾아냈습니다. 상해한인교회는 임정 요원들 다수가 신앙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찾는 과정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보물찾기 같았습니다. 연세대 신학과 이혜원 객원교수가 한·중·일 사료 클라우드에서 100년 전 고지도를 출국 전날 찾아냈고, 현장에선 골목길 이름 하나하나를 대조해 찾아 들어갔습니다. 독립운동이 워낙 다이내믹했기에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사료들이 많은 듯합니다.

양민경 기자=이번 기획엔 국내 모든 교회사 전공 교수님들이 자문위원 격으로 저희의 질문에 실시간 응답해 주셨습니다. 한 분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입수했다면서 서울 모처에 흰 옷차림의 사람들이 그득한 사진을 새로운 만세시위 장면으로 제보해주셨습니다. 교차검증 결과 고종 인산일인 3월 3일 사진으로 추정돼 아쉽게도 3·1운동 기획에는 실리지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당시 동대문 일대 언덕으로 보이고 고종의 상여를 보러 모였던 인파인 것 같다고 결론 내렸죠.

=이번 취재를 하며 사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신학대 교수님 연구실에 일본 헌병과 검찰의 자료가 산처럼 쌓여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100년 전 총회 당시 총회장은 3·1운동으로 구속돼 참석하지 못했지만, 노회별로 누가 어떤 형별에 처해졌고 누가 치료받다 사망했는지를 기록해 모아 둔 것도 봤습니다. 그런데 이를 연구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이니까 그나마 이 정도 진행된 것인데 아쉽습니다. 뜻 있는 교회들이 지원해 연구가 상설화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북한 취재를 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린 평양을 비롯해 정주 신의주 원산 함흥 등은 남쪽보다 분위기가 더 고조됐고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이 참여했는데 남북관계가 충분히 해빙되지 않아 가지 못했습니다.

=교단들의 연합 노력도 아쉽습니다. 광주 양림교회의 경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3곳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교단 분립 이전의 100년 역사를 함께 쓰면서 연합과 일치 노력을 더 보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일본과 더는 이렇게 지내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과거사 문제 해결의 단추는 일본의 식민지배 반성과 전쟁 책임 인정, 사죄와 배상 등이고 사실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분들이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인이 주축이 돼 한·일 간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는 자리가 더 자주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북아일랜드 분쟁 해결에서 교회가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의 도구로서 교회의 역할에 더 주목했으면 합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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