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척은 했는데…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여

안호성 목사의 사자처럼 담대하라 <7>

안호성 울산온양순복음교회 목사가 2004년 교회 개척 후 강단에서 설교하고 있다. 당시 29세였던 안 목사는 주변 도움 없이 교회를 세웠다.

드디어 2004년 1월 1일 창립예배를 드렸다. 아버지는 창립예배 때 처음 교회를 둘러보시더니 물끄러미 내 발아래 쪽을 바라보셨다. 헌 구두를 보신 모양이다. 교회를 짓느라 구두 밑창은 닳고 옆은 구멍이 나서 물이 샜다. 구두 한 켤레 살 돈도 내겐 사치였다.

“신발이 많이 헐었구나. 신발 사러 가자.” “고맙습니다. 아버지.” 울산 시내로 나가서 구두를 사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힘이 용솟음쳤다. 그때 받은 구두 한 켤레가 유일한 도움이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어디 찾아가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후원금을 요청하는 리스트를 만들어 순례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전폭적인 도움만 기다렸다. ‘이 신발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전도하고 기도하며 이 교회를 채우리라!’

울산에서 교회를 개척했다니 사람들이 비웃었다. 1000명 교회를 만들겠다고 하니 비웃었다. “목사님,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요.” 심지어 선배 목사님까지 충고했다. “허허, 안 목사. 내가 그 지역을 잘 알아. 젊은 혈기에 용기는 가상하지만, 거기는 안 돼.”

주변에선 이단 소리까지 들었다. 새파랗게 젊은 총각 전도사가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고 했다. 더 자극됐다. 내친김에 울산 최초의 1만명 교회를 세운다고 선포해버렸다. 주변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목사님, 열심히 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이 시골에서 되겠습니까.”

공공연히 패배감에 찌든 말이 떠돌았다. ‘이제 개척의 시대는 끝났다’ ‘농촌교회는 안된다’ ‘지금은 옛날처럼 십자가만 꽂아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대가 아니다’라는 요사스러운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울산온양순복음교회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교회 개척은 쉽지 않았다. 우리 교회는 울산 외곽에 있다. 시내에서 차로 부지런히 달려도 30~40분은 걸린다. 주거지도 아닌 농촌 마을이라 사람들이 찾기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도 그리웠다. ‘개척 후 문을 열었더니 낭떠러지더라’는 말이 실감이 됐다. 아버지가 충청도에서 목회하는 것을 보고 자랐지만, 겉만 본 것이었다. 크게 관심도 없었다. 부교역자 생활도 한 번 안 하고 교회를 개척하다 보니 목회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다. 교회 조직, 행정, 운영에서 까막눈이었다. 햇병아리 목회자였지만 내가 확실히 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빨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눈물이 났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당신의 마음이 내 심장에 전이됐다. 주님의 뜨거운 심령을 전하지 않으면 잠도 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예배다. 말씀이다.’

그래서 설교를 계속 준비했다. 그러나 교회도 짓고 개척도 했는데 설교를 들을 성도가 없었다. 예배당 끝에 달린 문만 바라보면서 기도했다. ‘문이 열려서 제발 사람들이 들어와 앉아라.’

아기를 출산한 엄마가 젖을 먹이지 않으면 가슴이 퉁퉁 붓는다. 젖을 끊은 뒤 엄마들이 젖이 심하게 불어 고생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말씀을 먹여야 하는데 먹일 사람이 없었다. 가슴이 불어 터질 것 같았다. 정말 가슴이 아프고 아팠다. 양 떼가 없는 목자의 심정을 누가 알까. 하나님께서 희망의 불씨가 되라고 했는데 좀처럼 문은 열리지 않았다. “주님, 개척은 했는데요, 낭떠러지네요. 희망의 불씨는커녕 제 코가 석 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드디어 교회당 문이 열리고 조심스럽게 한 사람이 들어왔다. 술에 취해 길을 잃고 우연히 교회에 들어온 남성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도 그리웠기에 그의 상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술에 취했든, 실수로 교회에 들어왔든 그동안 준비했던 설교를 이참에 다 해야겠다 싶었다.

그는 교회를 자기 집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취기에 잠기운까지 더해 쓰러질 듯 장의자에 앉았다. “교회에 잘 오셨습니다. 교회는 마음대로 들어올 수는 있어도 목사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곳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4시간이 넘도록 퉁퉁 불었던 설교를 쏟아냈다. 그런데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안호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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